2023. 2. 16. 14:31ㆍ카르마의 영혼
<너는 내가 준 것을 어떻게 썼느냐?>
당신의
빛나는 눈을 내리뜨시고,
복되신 얼굴을 숙이시고,
놀라운 미소로 병자들에게
몸을 구부려 감추시고,
그들을 쓰다듬어주고 고쳐주시니,
병자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그들 불행을 내려다보는
사랑 가득한 해 같은 얼굴을,
놀라서 쳐다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곧이어 다시
얼굴을 드셔야 하고,
탈 혼이 남긴 빛으로
아직 온통 감싸여 있는
평화로우신, 거룩하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얼굴이 어떤 것인지를
군중들에게 보여야 하신다.
예수께서 되풀이하신다.
“여러분에게 평화”하고.
예수의 목소리도 여느 때보다
더 음악적이며, 부드럽고
화려한 음을 들려준다.
… 힘찬 그 목소리는 말 없는
청중 위에 퍼지고,
그들 마음을 찾고,
쓰다듬어주고 감동시키고,
사랑하라고 권유하신다.
이해의 거부와
증오의 조상(彫像)처럼
한구석에 서 있는 무뚝뚝하고,
까다롭고, 살아있는 가시 자체보다
더 돋치고 찌푸린,
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집단을 빼놓고, 흰옷을 입고,
비탈 위에 외따로 떨어져,
서서 듣고 있는 또 다른 집단을
빼놓고는 모든 사람이
매우 감격해 있다.
그 집단을 바르톨로메오와
가리옷 사람이
“에세네파 사람들”이라고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말까지
유다교파 중의 하나로 엄한 규칙을 지키는
공동체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다)
말하는 것이 들리고
또 베드로는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새 매장이
또 하나 있는 셈이로군!”하고
중얼거리는 것이 들린다.
“오! 가만 놔두어라.
말씀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하고
예수께서 에세네파 사람들을
빗대어 웃으시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말씀을
시작하신다.
“만일 사람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원하는 것처럼
완전하면 훌륭할 것입니다.
모든 생각과 애정과 행위가
완전하면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완전할 줄 모르고,
사람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면서
그래도 좋은 일 하라며 명령하시고,
사람이 ‘저는 알지 못했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없도록
완전하게 하라며 권하시는
하느님의 주신 선물을
잘못 씁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 의지를
사람들은 어떻게 씁니까?
인류의 대부분은 마치 어린이가
쓸 수 있는 것처럼 쓰고,
나머지 인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범죄자처럼 씁니다.
그러나 곧이어 죽음이 오고,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되는데,
심판자는
‘너는 내가 준 것을 어떻게 쓰고
남용했느냐?’ 하고 엄하게
물으실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질문입니다!
그때는 재물 때문에,
그렇게 자주 죄인이던 사람이
세상 재물이 얼마나
지푸라기보다 못한 것으로
보이겠습니까!
영원한 가난의 빈곤한,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영혼의 옷을 빼앗긴 그는,
주님의 위엄 앞에서 창피해서
벌벌 떨고 있을 것이고,
변명할 말 한마디도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정말로 세상에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속여
자신을 변호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선 하느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절대로.
또 하느님께선 비굴하게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그럼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타락에서 오는 것까지도 구원에
필요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귀금속과 보석을
부의 수단이라 가르치며,
권세욕과 육욕을 자극하는
타락에서 오는 것까지도 말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무절제하게, 황금과 명예와
여자를 가지고 싶어 함으로
언제나 죄를 지을 수 있는데
그때는 부자가 가진 것을
빼앗기 위해 도둑이 됩니다.
그러면 부자이거나 가난한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겠습니까?
아닙니다.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재물을 선에 도움이 되게 하고,
빈궁함을 선에 도움이 되게 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샘내지 않는 가난한 사람,
저주하지 않고,
남의 것을 해치지 않고,
자기가 가진 걸 만족하며,
자기의 비천한 처지를
미래의 자기 성덕을 얻는데
도움 되게 하는 가난한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 줄 압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만큼
그렇게 할 줄을 잘 모릅니다.
부자들에겐 재물이,
사탄과 세 가지 사욕(邪慾)의
끊임없는 함정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그러면 부자도 부자로 있으면서
구원받을 수 있고,
또는 부정하게 취득했다더라도
재물을 잘 쓰면
그의 잘못을
속죄할 수도 있습니다.
지극히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구원을 받도록
항상 그들에게 수많은 방법을
남겨두시기 때문입니다.
지배인을 둔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부자의 훌륭한 처지를
시기하는 그와 원수인 어떤 사람이나,
부자의 친한 친구고, 그의 안락을
걱정하는 사람이 주인에게 가서
그 지배인을 비난합니다.
‘그 사람이 당신 재산을 낭비하거나
가로채거나 이익 나게 하는 걸
소홀히 하니 조심하시오!
자위책을 쓰시오!’ 하고.
부자는,
이 비난을 여러 번 들은 다음
지배인을 자기 앞에 출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을
들었는데 대체 왜 그렇게 했는가?
자네 관리에 대한 보고를 하게,
이제는 자네가 내 재산
관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자네를 믿을 수 없고,
또 불공평과 자유방임의
본보기를 줄 수도 없네.
그렇게 하면 다른 하인들도
자네가 한 것처럼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될 테니까.
가보게, 그리고 서류 일체를 가지고
내일 다시 오게. 그것을 검사해서,
새 지배인에게 내 재산을
맡기기 전에 내 재산 상태를
알 수 있게 말일세.’
그리고 지배인을
돌려보냈습니다.
지배인은 걱정이 되어,
가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주인이 지배인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지금,
나는 어떻게 하지?
위험을 교묘히 면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가로챈 것들은 모두 써버렸기
때문에, 모아둔 재산도 없다.
어떤 주인 밑에서 농사꾼으로
간다는 것은,
내가 일하는 습관을 잃었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
몸이 무거워졌기 때문에
내게는 적당치 않다.
동냥을 하는 것은 더욱 안 된다.
그건 너무 창피스러운 일이거든!
어떻게 한다?’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의 괴로운 처지에서 헤어나는
방법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옳지, 찾아냈다!
지금까지 편한 생활을
확보했던 것처럼, 이제부터는
내가 지배인 자리를 잃었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일
친구들을 확보하겠다.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친구들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내게 도움을 주도록
내가 먼저 도움을 주기로 하자.
그리고 소문이 퍼져
늦기 전에 즉시 하기로 하자.’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
여럿을 찾아가서
첫 번째 사람에게 말합니다.
‘3년 전 봄에 우리 주인이 빌려준
돈을 얼마를 갚아야 하오?’
그 사람은
‘원금과 이자를 합해
기름 백 통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불쌍도 하지!
아이가 그렇게 많고,
앓는 아이도 있는 당신이
그렇게 많이 갚아야 하다니?!
하지만 우리 주인이 당신에게
준 것은 30통 값어치가 아니었소?’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우
절박한 처지에 있던 터라서,
주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에게 그걸 주네만, 3년 동안
그 돈으로 버는 것을 내게 준다는
조건일세) 하고.
그런데 지금 그 돈으로
기름 백통 값어치를 벌었으니까,
그것을 갖다 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건 고리대금업자나
다름없소! 안 되오, 안 돼.
주인은 부자고,
당신은 먹기도 힘든 처지요.
주인은 가족도 별로 없는데,
당신은 가족이 대단히 많소.
수입이 50통 값어치가 있었다고
쓰시오. 그리고 그 일을
잊어버리시오.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맹세하겠소.
그럼 당신은 이익을 볼 거요.’
‘그렇지만 당신은 나를 배신하진
않겠지요? 만일 주인이 알게 되면?”
‘천만에! 나는 지배인이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신성하오.
하라는 대로 하시오.
그리고 행복하게 사시오.’
그 사람은 그렇게 쓰고
서명하고 말했습니다.
‘축복받으십시오! 내 친구며 구원자!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조금도 그럴 필요 없소!
그러나 만일 당신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해서 쫓겨나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를 받아 주겠지요.’
‘그야 물론이지요! 물론이고 말고요!
믿으셔도 됩니다.’
지배인은 또 다른 빚진 사람을
찾아가 거의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곡식 100말을
갚아야 했습니다.
3년 동안 가물어서 그는 농사지은
것을 망쳐서 가족을 먹이기 위해
부자에게서 곡식을 꾸어다
먹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건 말도 안 되오.
주인이 준 것에 배를 갚아야 하다니!
또한 밀을 거절하다니!
그리고 너무나 풍성한 그의
저장된 창고 곡식은 벌레가 먹는데,
배가 고프고 아이들이 있는
사람에게 곱절을 요구하다니!
80말이라고 쓰시오.’
‘그렇지만 주인이 내게 20말을 주고,
다음에 또 20말,
그다음엔 열 말을 주었다는 걸
기억하면 어떡합니까?’
‘아니, 그걸 주인이 어떻게 기억하오?
내가 당신에게 곡식을 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
그렇게 해요.
그래서 곤경에서 빠져나가시오.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 사이에는
정의가 있어야 하오!
내가 주인이라면,
나는 50말만 요구하겠소.
어쩜 그걸 탕감해 줄지도 모르겠소.’
‘당신은 착하십니다.
모두가 당신 같았으면!
우리 집은 당신에게 친구의
집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지배인은 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도 찾아가서,
일을 공평하게 하고
새로 정리하기 위해, 고통을 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언명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약속과 축복이
그에게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지배인은 장래가 보장되자,
안심하고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지배인의 뒤를 밟아,
그의 수단을 알아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배인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행동 방식은 좋지 않네.
그래서 그것은 칭찬 안 하겠네.
그러나 자네 솜씨는 칭찬하네.
정말이지, 정말이지,
세속의 자식들이
빛의 자식들보다
더 빈틈없이 하네’하고.
이처럼 부자가 말했던 것을
나도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사기행위는 훌륭한 것이 못 됩니다.
그래서 그 때문에 아무도
절대로 칭찬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세속의 수단을 가지고
빈틈없이 되어
세속의 자식처럼 해서,
그것들을 빛의 나라에 들어가는
통행료가 되게 하라고 권합니다’하고.
즉 불공평하게 분배되어,
잠깐 사이에 지나가는
안락에 사용되는 방편이고,
영원한 나라에선 가치 없는
세상의 재물로
영원한 나라의 문을 열어 줄
친구가 되도록 하시오.
여러분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방법으로 선을 행하고,
여러분이나 여러분 집안의
다른 사람이 옳지 못하게
취득한 것은 돌려주시오.
그리고 재물에 대한, 병적이고
죄가 되는 애정을 여러분에게서
떼어버리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이 죽을 때
영원한 문을 열어주고,
지극히 행복한 처소에
여러분을 받아들이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세상 재물조차도 잘 쓸 줄
모르는 것을 보시면,
어떻게 여러분이 하느님께
천당 복을 주십사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은 있을 수 없는 가정이지만,
여러분은 하느님이 천상에서
예루살렘에서 낭비되는 구성원을
받아들이길 원하고 있다고 여깁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사람들은 사랑과
너그러운 경로 속에 살 것입니다.
모두가 한 분을 위해서,
모두가 모두를 위해서,
성인들의 교섭은,
활발하고 정직한 하나의 사회며,
거룩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옳지 않고
불충실함을 보인 사람은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질 테니까.
거기 가면 우리가 충실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 불충실한 사람은
전부를 차지해도 불충실할 것이고,
작은 일에 옳지 못한 사람은
큰일에도 옳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에서 행하는 시험에서,
세상의 재물도 볼 줄 모르고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람에게는,
참된 재산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남을 우려먹거나
속임수를 쓰거나 탐욕스럽게
보존할 줄밖에 모른다는 것을
보여 주면,
어떻게 하느님께서
세상에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을
지원하는 임무를
여러분에게 맡기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보물을,
즉 여러분에게 주려고
남겨 두셨던 보물을,
세상에서 빈틈없이
쓸 줄 알아서,
옳지 않고 불건전한 것을,
옳고 건전한 일에 소용되게 한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 주인이나 저 주인에게
딸려있거나,
이 주인이나 저 주인을
미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골라잡을 수 있는
두 주인은 하느님 또는
맘몬(재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하느님께 속하길 원하면,
맘몬의 제복을 입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방법을 써서는
안 됩니다.”
에세네파 사람들 집단에서
한 목소리가 올라온다.
“사람은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자기 운명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운명이 지혜롭지 않게
분배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완전하신 생각의 당신이 정한
완전한 계획을 위해,
하늘에 갈 자격이 있는
사람들 수를 정하셨습니다.
이외 다른 사람들은
하늘에 이르기 위해
노력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달리 될 수 없습니다.
집에서 나가던 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진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반면,
격정 중에도 아주 작은 상처
하나도 입지 않고
살아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씌어 있지도 않은데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은,
알지도 못하면서
죄밖에 짓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영벌은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여보시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 생각은 잘못이오.
그렇게 생각하면 주님께 중대한
모욕을 하는 것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을 증명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생각을 고치겠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당신은 그 말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을 똑같이,
똑같은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십니다.
다른 어떤 일에도 그러하듯
당신의 아버지다운 감정에서도
완전하십니다.
이런데 어떻게 차별을
두실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수태되었을 때는
죄 없는 태아에 지나지 않은데
어떻게 그를 저주하실 수 있습니까?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없는
그 순간부터 말입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모욕을
설욕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설욕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초라한 희생 같은,
즉 강요되는 부당한 희생으로
만족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지은 죄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에
의해서만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 분만이 속죄를 하지,
이러저러한 사람이 속죄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 내가 원죄만
없애기만 할 수 있었더라면!
만일 세상에 카인이 없고,
라멕, 타락한 소돔인, 살인자,
도둑, 간음자, 간통자,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
부모에 대해 사랑이 없는 자식들,
맹세를 어긴 자, 등등이 없었더라면!
그러나 이 죄들 하나하나의
장본인은 하느님이 아니시고,
사람이 죄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식들에게
선이나 악을 골라잡을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잘하지 않으셨습니다”하고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외친다.
“하느님은
우리 힘에 벅찬 시험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약하고 무식하고
타락했다는 것을 아시면서
우리를 유혹당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경솔 아니면 악의입니다.
의인인 당신은 내가 말하는
이 진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당신은 나를 시험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충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그때도 하느님은 잘못하셨습니다.
낙원에 유혹의 나무를 두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행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개인적 행위 없이
하느님의 행위로만 살았을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선생을
시험하려 합니다.
그 교활한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우리말을 들으십시오.
금욕과 묵상 속에서 사는
우리말을요”하고
조금 전의 에세네파 사람이 외친다.
“그렇습니다.
당신들은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잘못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런 생활을
거룩하게 하지는 못합니까?”
에세네파 사람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이 자유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말해 주셔서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며, 선입관 없이
그것을 묵상하겠으니,
이제는 선생도 말해 주십시오.
육체의 부활과 육체가 와서
보충할 영의 생활을 실제 믿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하느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이렇게
끝마치기를 원합니까?”
“그렇지만 영혼이… 상급으로 인해서
영혼이 지극히 행복하게 될 터인데,
물질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것으로 성인들의 기쁨이
더해지겠습니까?”
“성인이 하느님을 차지할 때
가지게 될 기쁨보다 더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꼭 한 가지가
마지막 날에 그 기쁨을
더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는 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의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육체와 영혼이
하늘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일치해서 했으니,
영원의 날에 육체와 영혼이
일치해 상을 누리는 것이
당신에게는 옳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왜 금욕과
묵상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욕망에
저항할 수 없는
다른 동물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인
사람 노릇을 더 잘하기 위해,
또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성서 글귀를
양피지와 술 장식과 작은 털 다발과
넓은 옷을 뽐내듯 펼쳐 놓고,
자기들을 ‘별개의 인간’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까지도
동물성으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군중들이 감탄하여 웅성거리게 한
저주의 화살을 정면으로 맞았다.
그들은 마귀 들린 사람처럼
몸을 뒤틀고 소리를 지른다.
“저 사람은 우리를 모욕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의 거룩함을
알고 계시지요.
우리를 변호해 주십시오”하고
그들은 손짓하며 외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저 사람도 당신들의 위선을
알고 있습니다.
옷은 성덕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칭찬받을 만한 자격을 얻으시오.
그러면 내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세네파 사람 당신들에게는
당신들은 너무나 작은 일 때문에
희생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왜? 누구를 위해서?
얼마 동안이나 희생합니까?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죽을 육체를 위해서?
매가 날아가는 것보다도
더 빠른 세월 동안
당신의 희생을 향상하시오.
참 하느님과, 복된 부활과
사람의 자유의지를 믿으시오.
고행자로 사시오.
그러나 이 초자연적인 이유를 위해
그렇게 하시오.
그러면 부활한 당신의 육체와 같이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늙었습니다!
나는 어쩌면 그릇된 종파에 머물러
있어서 내 인생이 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제 끝났습니다!…”
“아닙니다. 선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인 여러분, 들으시오.
오류 속에 있는 여러분, 들으시오.
여러분,
여러분의 과거가
어떠하든 들으시오.
뉘우치고, 자비에게로 오시오.
자비는 여러분에게 팔을 벌립니다.
여러분에게 길을 가리킵니다.
나는 깨끗한 샘, 생명의 샘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바른길에서
벗어나게 한 것들을 버리시오.
벗은 몸으로 목욕하러 오시오.
그리고 빛을 입으시오.
새로 태어나시오.
도둑이 큰길에서
도둑질을 했습니까?
또는 상업이나 관청에서
큰 양반인체 계략을 써서
도둑질을 했습니까? 오시오.
부정한 악습이나
격정을 가졌었습니까? 오시오.
압제자였습니까? 오시오.
오시오! 뉘우치시오.
사랑과 평화에 오시오.
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이
여러분 위에 쏟아져
내려올 수 있게 하시오.
여러분의 저항과
여러분의 두려움과
여러분의 망설임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이 사랑의
고통을 덜어주시오.
나와 여러분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제발 부탁합니다.
생명과 진리를 찾아오시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외친다.
“저는 부자이고 죄인입니다.
오기 위해서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하느님과 당신 영혼에 대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시오.”
(중략)
사람들은 장소가 좁아서 그런지,
또는 마음을 끄는 예수의 힘 때문에
그런지 천천히 떠난다.
그리고 떠나간다.
… 사도들만이 예수와 함께 남아서
말들을 하면서 길을 떠난다.
그들은 헝클어진 위성류(滑城柳)의
작은 숲 곁을 지나가면서
그늘을 찾는다.
그러나 그 속에 에세네파
사람이 한 명이 서 있다.
예수와 말을 했던 그 사람이다.
그는 흰색 천 옷을 벗는 중이다.
앞서가던 베드로는
그 사람이 짧은 잠방이만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뛰어서 뒤로 돌아와서 말한다.
“선생님! 미친 사람입니다!
선생님과 말을 하던 사람
에세네파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옷을 벗고 울고
한숨을 쉽니다.
우리는 그쪽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짧은 잠방이만 입고
샌들만 신은 마르고 수염 난
그 사람은 벌써 작은 숲에서 나와
울고 가슴을 치면서
예수께로 온다. 그는 꿇어 엎드린다.
“전 마음의 기적을 받은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제정신을 고쳐주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저는 저를 오류로 감싸던 일체의
다른 생각을 버리고 빛을 입습니다.
저는 참 하느님을 묵상하고,
생명과 부활을 얻으려고 결단합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제게 새 이름을 하나 주십시오.
그리고 선생님과 선생님의 말씀으로
살 곳을 한 군데 일러주십시오.”
“이 사람 미쳤군!
우리도 그렇게나 많은 말씀에도
그렇게 살 수 없을 텐데!
이 사람은… 말씀을
한 번 듣고서…”하고 사도들이
서로 말한다.
그러나 사도들의 말을 듣는
그 사람은 말한다.
“그럼 당신들은 하느님께
한계를 지어드리려고 합니까?
선생님께서는 내게 자유로운
정신을 주시기 위해
내 마음을 부수었습니다. 주님!”
그러면서 예수께로
팔을 내밀면서 애원한다.
“그러시오.
엘리야라는 이름을 받으시오.
그리고 불이 되시오.
이 산에는 동굴이 대단히 많습니다.
동굴로 가시오.
그리고 무서운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거든 나와서
주님의 봉사자들을 찾아
그들과 합치시오.
당신도 생명으로 돌아와
봉사자가 되시오. 가시오.”
그 사람은 예수의 발에
입맞춤하고 일어나 간다.
“아니 저 사람은 옷을
벗은 채로 가나!”하고
사도들은 깜짝 놀라서 묻는다.
“저 사람에게 겉옷과 칼과
부싯깃과 부시와 빵을 주어라.
저 사람은 오늘과 내일
길을 가고 나서, 우리가 머물렀던
곳으로 찾아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다.”
안드레아와 요한이 뛰어가서
그 사람이 길모퉁이로 사라지려고
하는 순간에 그를 따라잡았다.
그들은 돌아와서 말한다.
“그 사람이 그것들을 받았습니다.
저희들은 우리가 있었던 곳도
일러 주었습니다.
정말 뜻밖의 수확입니다.
주님!”
“하느님께서는 바위에도
꽃을 피우게 하신다.
마음의 사막까지도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을
일으켜 나를 위로하신다.
이제는 예리고 쪽으로 가자.
어떤 시골집에서 머물도록 하자.”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https://cafe.daum.net/xp8046/YVLR/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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