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9. 06:06ㆍ카르마의 영혼
<진리를 찾는 사람>
“여기서 말씀하시겠습니까?”
“그것을 바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선생님, 제가 있습니다.
목마를 때의 물보다 더 원합니다”
하고 로마 사람이 외친다.
“목이 마릅니까?”
“몹시 마릅니다.
저는 시내에서부터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티베리아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이 많은데요.”
“선생님, 아시면서 그런 체하지
마십시오.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왜 따라오셨습니까?”
“왜 그런지, 어떻게 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저 여자를 보고 그랬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가리킨다).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인가 제게
‘저분이 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네게 말해 줄 것이다’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저분에게 물과 무화과를 드려라.
몸에 기운을 내시게.”
“그러면 정신은요?”
“정신은 진리로 기운을 냅니다.”
“저는 그 때문에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저는 지식에서 진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타락을 찾아냈습니다.
학설에는 아무리 훌륭한 학설도
항상 안 좋은 어떤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싫증이 나도록,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
이 순간 말고는 다른 장래가 없는
혐오감만 주는 인간으로까지
타락했습니다.”
예수께서 사도들이 갖다 드린,
빵과 무화과를 드시면서
그 사람을 유심히 바라다보신다.
식사는 이내 끝났다.
예수께서는 앉으신 채로
마치 단순히 당신 사도들을
가르치시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일생 동안 진리를 찾는데도
그것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청동판을 눈에 대놓고
보기를 원하며,
경험적으로 더듬거려
진리에서 점점 더 멀어지거나,
미친 듯이 찾는 중에, 또 그것을
옮기거나 진리 위에 떨어뜨려,
진리를 가리는 미친 사람들과 같다.
그들은 진리가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진리를 찾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선
지능과 사랑을 합쳐야 하고,
사물을 현명한 눈으로만
볼뿐 아니라,
진실한 참됨의 눈으로도
보아야 한다.
진실한 참됨의 착함은,
지혜보다 더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진리로 가는 길을 가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육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고
육체로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육욕이다.
사랑은 영혼과 영혼 사이,
즉, 높은 부분과 높은 부분
사이의 애정이다.
이 애정을 통해 사람은,
아내를 종으로 보지 않고,
자녀를 낳는 여자로
오직 이것으로만 본다.
즉 남자와 하나로 전체를 이루어
생명을, 여러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반쪽으로 보는 것이다.
즉 남자의 어머니며, 자매며, 딸이며,
경우에 따라선 갓난아기 보다
더 약하거나 사자보다 더 강하며,
어머니와 자매와 딸로서 신뢰하고
보호하고 존경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 이외의 것은,
사랑이 아니라 모두 타락이다.
그것은 사람을
위로 데려가지 않고
아래로 끌고 가며,
빛으로 데려가지 않고
어둠으로 끌고 가며,
볕으로 데려가지 않고
진흙탕으로 끌어간다.
이웃을 사랑할 줄 알기 위해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하느님을 사랑할 줄 알기 위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진리의 길이
발견될 것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아,
진리는 여기에 있다.
진리는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지식을 이해하는 비결이다.
하느님의 가르침 외는
결함 없는 학설이 없다.
사람이 그에게 해답을 주실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누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최고의 장인(匠人)이 아니고선
누가 우주의 신비를 알 수 있고,
그저 순전히 그 신비만이라도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어떻게 사람이라는
살아있는 기적을 이해하겠느냐?
그 안에 동물적 완전과,
영혼이라는 불멸의 완전함이
혼합되어있는 사람,
만일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영혼으로 되어 가지고 있으면,
짐승의 가치로까지
떨어질 만한 잘못을 저지르고
또 그런 짓 한 것을
오히려 자랑하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으려는 그런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가 신들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말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욥이 한 것과 같은
말을 하겠다.
‘말과 소에게 물어보아라,
그놈들이 너를 가르쳐 줄 것이다.
새들에게 물어보아라,
그놈들이 너를 이해하게
해줄 것이다.
땅에 말하여라,
땅이 네게 대답할 것이다.
물고기들에게 말하여라,
그놈들이 네게 알려줄 것이다.‘
그렇다,
푸르러지고 꽃이 핀 이 땅,
나무 위에서
굵어지고 있는 저 열매들,
번식하는 저 새들,
구름을 분산시키는 이 바람,
수백, 수천 년째 뜨고도
시간이 틀리지 않는 저 해,
이 모든 것이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하느님을 설명하고,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며
공개하고 있다.
만일 지식이
하느님께 근거를 두지 않으면
오류가 되어,
사람을 고상하게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천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식이 신앙인 때는
타락이 아니다.
하느님을 통해 아는 사람은
그의 품위를 느끼고
그의 영원한 장래를
믿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재(實在)하는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신들이 아니라
아직 정신적인 무지(無智)의
기저귀에 싸여 있는 사람들의
망상의 환상들을
찾아선 안 된다.
이들에게는
그들 종교에 의한
지혜의 그림자도 없고,
그들의 믿음에
진리의 그림자도 없다.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지혜롭게 될 수 있다.
이것도
욥에 있는 말이다.
‘저녁때도 한낮의 빛과 같은 빛이
너를 위해 떠오를 것이고,
네가 끝장났다고 생각할 때도
샛별처럼 네가 일어날 것이다.
너를 기다리는 바람으로
너는 자신만만하게 될 것이다.’
진리를 찾아내려면,
진실하고 참된 착한 뜻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진리는 언젠간
발견될 것이다.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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