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별세

2023. 4. 3. 06:41카르마의 영혼

 

<성모님의 별세>

 

 

 

옥상 높이의

당신 혼자 계시는 작은 방에

 

성모님은 온통 흰 아마포

옷을 입으셨다.

 

몸 전체를 감싼 옷도,

목 아래쪽에서 채워져 어깨 뒤로

흘러내린 겉옷도,

 

머리에서 늘어진 아주 고운

베일도 모두 희다.

 

성모님은 당신 옷들과

늘 보존해 오는 예수의 옷들을

정리하시는 중이다.

 

제일 좋은 것을 고르시는데,

별로 없다.

 

 

당신 옷 가운데서는

갈바리아 산에서 입으셨던 옷과

겉옷을 꺼내시고,

 

아드님의 옷 가운데에선

여름에 늘 입으시던 아마포 옷과

 

겟세마니 동산에서 찾아낸

겉옷을 꺼내시는데,

 

겉옷에는 그 무서운 시간에 흘렸던

피와 땀의 얼룩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옷들을 정성스럽게 개키고,

당신 예수의 피로 얼룩진 겉옷에

입맞춤하신 다음

궤 있는 쪽으로 가신다.

 

그 궤 속에는

이젠 여러 해가 지났지만,

 

최후의 만찬과 수난의 유물을

모아둔 것이 보존되어 있다.

 

 

성모님은 모두를 한 칸에,

즉, 위 칸에 모아 놓으시고

모든 옷은 아래 칸에 넣으신다.

 

성모님이 궤를 닫고 계신 데,

요한이 소리 없이 옥상으로 올라와

 

성모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보려고 앞으로 다가왔다.

 

성모님이 아침나절 시간을 보내기로

되어 있는 부엌에 오랫동안

 

안 오시는 것이

아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 뭘 하세요? “

 

하고 묻는 바람에

성모님이 돌아보신다.

 

 

"보존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정리했다.

 

모든 기념되는 물건들…

예수의 무한한 사랑과 고통을

증언하는 모든 것들. “

 

"어머니, 왜 그 마음 아프게 하는

물건들 다시 보셔서

 

마음의 상처를

새로 건드리십니까?

얼굴이 창백하고 손을 떠시는군요.

 

…그럼 그것들 보시는 것이

아직 고통스러우십니까?"

 

요한은 성모님이 그렇게 창백하고

떨고 계시기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 쓰러지실까 봐

 

걱정되는 것처럼

성모님께로 다가가면서 말한다.

 

 

"아! 아니다.

이 때문에 창백하고 떨리는

것이, 아니다.

 

내 상처가 다시 터져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 사실은 내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안에는 평화와

기쁨도 있는데.

 

그것이 지금처럼

완전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

 

"지금 같은 적이 없었다고요?

저는 잘 못 알아듣겠습니다.

 

 

… 저는 끔찍한 추억이 가득 담긴

이 물건을 보기만 해도

그때 괴로움이 다시 살아나는데요.

 

그래도 저는 제자에 지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데요…."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어머니인 만큼 더 괴로워할

것이란 뜻이지.

 

인간적으로는 네 말이 옳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는 예수와 헤어지는 고통을

참고받는 것이 습관이 되었었다.

 

예수가 내 가까이에 있는 것이

지상낙원이었으니까

 

헤어지는 것은 항상

고통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또한 자발적으로

차분하게 참기로 했었다.

 

그것은 예수가 하는 것은 모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었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나는 항상 나에 대한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나를 떠날 땐 나는 분명히

괴로웠고, 외로움을 느꼈다.

 

예수가 어렸을 때 성전의 박사들과

토론하려고 나를 몰래 떠났을 때

 

내 고통이 정말 얼마나 심했는지

하느님만이 헤아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인 나는

나를 그렇게 떠난 것에 대한

 

당연한 질문 외에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또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가 선생이 되기 위해 나를

떠났을 때도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남편을 벌써 잃었었고,

몇 사람만 빼놓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읍내에 혼자 있는 처지였다.

 

그리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가 그렇게 대답한 데 대해서도

놀라운 표시를 하지 않았다.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있었다.

 

나는 예수가 아버지의 뜻을

마음대로 하게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는 의견을 말하거나 부탁을

하거나 할 수 있었다.

 

제자들에 대한 의견과 어떤 불행한

사람들을 위한 부탁을.

 

그러나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았다.

 

예수가 나를 떠나 세상을

두루 다닐 때 나는 괴로웠다.

 

그 세상에 사는 것이 예수에게는

괴로움이 될 만큼,

 

세상은 그에게

적대적이었고 죄가 많았었다.

 

 

그러나 예수가 내게 돌아올 땐

얼마나 기뻤는지!

 

정말이지 그 기쁨은 너무나 커서

이별의 고통을 일곱 번씩 일흔이나

벌충해 주는 정도의 것이었다.

 

예수가 죽은 다음에 있은

이별의 고통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예수가 부활해서 내게

나타났을 때의 기쁨은

무슨 말로 다 할 수 있겠느냐?

 

예수가 아버지께로 올라감으로

인해 헤어진 것에서 오는

마음의 고통도 엄청났고,

 

이 고통은 이 세상에 사는

내 생명이 다할 때야 비로소

끝날 것이다.

 

이젠 내가 다 살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기쁨에 빠져 있다.

 

 

고통이 엄청났던 것처럼

대단한 기쁨에.

 

나는 이 땅에서의

내 사명을 다했다.

 

다른 사명, 즉 하늘에서의

사명은 끝이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도 내 예수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할 때까지

이 세상에 남겨 두셨다.

 

그리고 나도,

예수가 '이제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 때 느꼈던 그 은밀한 기쁨,

 

그 지극히 고통스러운 마지막의

격렬한 아픔을 달래는 오직

한 방울의 향유 같은

 

그 은밀한 기쁨을

내 안에 느꼈다."

 

 

"예수님께서 기쁨이 있었다고요?

그 시간에요? “

 

"그렇다. 요한아.

사람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벌써 하느님의 빛 속에서

살아와서, 그 빛의 덕택으로

 

영원하신 분께서 왕으로서

당신을 비밀로 덮으시고

 

베일 밑에 숨겨진 일을 하는

사람으로선 이해할 수 있는

기쁨이다.

 

그 사건들로 인해 가슴 아파하고

깜짝 놀라고..

 

내 아들과 함께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던 나는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그 시간에는 빛이

모든 사람에게 꺼졌었다.

 

예수를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은

모든 사람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꺼졌었다.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도 공동 속죄 자가 되어야 하므로,

내가 하느님의 위안을

받지 못한다는 고민과

 

암흑과 고뇌와,

예수가 말한 것이 가능한 것임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유혹과

 

예수가 목요일에서 금요일에 걸쳐

정신으로 겪은 그 모든 고통을

나도 겪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후 나는 깨달았다.

영원한 부활의 빛이 내게

나타났을 때 나는 깨달았다.

모든 것을.

 

'나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시키신 것을 다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희생으로

바칠 만큼 아버지를 사랑하고,

 

사람들을 위해 죽을 정도로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의 한도를 채웠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은 다했다.

 

비록 죄 없는 내 육체는 갈기갈기

찢겼지만 만족스러운 정신을

가지고 죽는다' 고,

 

예수가 말했을 때,

그리스도의 은밀한 극도의

기쁨까지도 느꼈다.

 

 

나는 영원으로부터 내가 해야 할

것이라고 쓰인 모든 것을 행했다.

 

구세주를 낳음으로부터

그의 사제들인 너희가 완전히

성숙해지는 도움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교회가 조직화되고

강하게 되었다.

 

성령께서 이 교회를 비추시고,

최초의 순교자들의 피가

견고하게 되고 불어나게 하며,

 

내 도움이 이 교회를 거룩한

조직체가 되게 하는 데 이바지했다.

 

이 거룩한 조직체를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대한

사랑으로 점점 더 강하게 하고,

 

여기에서는 증오와 원한과

질투 같은 사탄의 잡초가

돋아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기쁘게 생각하시고,

 

너희들의 입으로 이것을

말하는 걸 듣기를 원하시며,

 

또 너희들이 더 완전해지기 위해,

또 그리스도인의 수가 늘어나고

교회가 더 힘 있게 퍼지기 위해

 

계속해서 사랑이 커지도록 하라는

말을 내가 너희들에게

해 주기를 원하신다.

 

예수의 가르침은

사랑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이고,

 

예수의 생활도 내 생활도

항상 사랑의 인도를 받고

사랑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도 물리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을 용서했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용서를 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가 증오의 노예가 되어

우리의 한없는 사랑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 네가 혼자 남게 되거든…

이 궤를 지켜라…. “

 

요한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성모님이 당신 사명이 다한 것을

 

느낀다고 말씀하실 때 그랬던

것보다, 한층 더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성모님의 말을 막고 이렇게 묻는다.

 

 

"어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몸이 불편하십니까? “

 

" 아니다 "

 

"그러면 저를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 있을

때까지 너와 함께 있을 거다.

 

그러나 요한아,

혼자 있을 마음의 준비를 해라. “

 

"그럼 지금 어머니 몸이 불편하신데,

제게 숨기려고 하시는 거군요!…“

 

"아니다. 정말 아니야.

나는 지금처럼 튼튼하고 화평하고

기쁘게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안에

너무나 큰 환희와 너무나 충만한

초자연적 생명이 있어서…

 

그렇다.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는

그것을 견디어 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날 정도다.

 

 

그리고 나는 영원하지 않다.

너는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내 영은 영원하다.

그러나 육체는 그렇지 않다.

 

내 육체는 어떤 사람의 육체와

마찬가지로 죽게 되어 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는 돌아가실 수가 없고,

돌아가셔도 안됩니다!

 

티 없는 어머니의 육체는 죄인들의

육체와 같이 죽을 수는 없습니다! “

 

 

"요한아, 네 생각은 틀렸다.

내 아들도 죽었다!

그리고 나도 죽을 것이다.

 

나는 병과 임종의 고통과

죽음의 경련은 겪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죽기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들아,

네가 알아야 할 것은

 

만일 내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완전히 나만의 것인 예수가

나를 떠난 뒤부터 계속

가지고 있던 소원이었다.

 

이것은 내 첫 번째 소원이고,

완전히 나만의 간절한 소원이며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원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다.

 

 

내 일생 동안,

나의 모든 것과 나의 뜻은

 

하느님 뜻에 동의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동정녀로 있겠다는 뜻도

하느님께서 친히,

 

소녀인 내 마음에 넣어 주신

하느님의 뜻이었고,

 

요셉과의 결혼도 하느님의 뜻이었고,

동정녀로 예수의 어머니가 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었다.

 

내 일생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와 다시 결합하고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뜻이다.

 

 

세상을 떠나 하늘에 가서 영원히

그리고 끝없이 예수와 같이

있는 것 말이다!

 

이것은 여러 해 전부터

내가 가져온 소원이다!

 

그런데 이제 이 소원이 현실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느낀다.

 

요한아, 그렇게 불안해하지 말고,

그보다도 내 유언을 들어라.

 

내 육체가,

생명을 주는 영이 없어지고

평화롭게 누워 있거든,

 

히브리인들 사이에 관습으로

되어 있는 향료 바르는 일을

겪게 하지 않도록 하여라.

 

이제 나는 히브리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안에 그리스도,

 

살과 피를 가진

그리스도를 가졌었고,

 

내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제자였고,

또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속죄 자였고,

 

그리스도의 제자인 여기서,

너희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계승자였기 때문에

 

내가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와

내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본

사람을 빼놓고는

 

아무도 내 몸을

보지 못했다.

 

 

너는 나를 자주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궤’

라고 불렀다.

 

이제 너는

궤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사제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는 사제이고

성전의 대사제보다 훨씬 더

거룩하고 깨끗하다.

 

그러나 나는

영원한 대사제만이 알맞은 때에

내 육체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내 몸을

건드리지 말아라.

 

 

그뿐 아니라, 알겠느냐?

나는 벌써 몸을 깨끗하게 하였고

깨끗한 옷을,

 

영원한 혼례식의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왜 우느냐, 요한아!"

 

"심한 고통이 제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머니를 멀지 않아

잃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머니 없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이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고통을 견디어 내지

못하겠습니다! "

 

 

"견디어 낼 거다.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처럼

너를 도와 살게 하실 것이고,

 

그것도 오래 살게 하실 것이다.

만일 하느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더라면,

 

골고다와 올리브 동산에서

예수가 죽었을 때와

하늘에 올라갔을 때,

 

나는 이사악이 죽은 것처럼

죽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너를 도와

살게 하실 것이고,

 

내가 전에 네게 말해준 것들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기억나게 하실 것이다. “

 

"아이고! 기억하겠습니다. 모든 것들을.

그리고 어머니의 육신에 대해서도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의식이

그리스도인이신 어머니께는,

 

완전히 깨끗하신 어머니께는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어머니는 육체의 부패를 겪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어머니는 원죄를 면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보다 한층 더

 

어머니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시라는 것 외에 은총 자체이신

말씀을 몸 안에 모신 까닭에,

 

말씀의 가장 참다운

유물이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의 육체보다

 

 

신격화(神格化)되신 어머니의 육체는

무엇을 따질 것도 없이

죽은 육체의 분해,

 

부패를 겪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어머니께 대해,

어머니 안에 행하시는

 

하느님의 마지막

기적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는 지금의 상태 그대로

보존되실 것입니다…."

 

"그러면 울지 말아라!" 하고

성모님은 온통 눈물에 젖어 엉망이

된 사도의 얼굴을 바라보시며

외치신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신다.

"만일 내가 지금 있는 그대로

보존된다면,

 

너는 나를 잃지 않는

것이, 될 거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아라! “

 

 

"어머니가 부패를 면하신다 해도

저는 역시 어머니를 잃습니다.

저는 그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폭풍우 같은 고통에

휩쓸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를 부러뜨리고

쓰러뜨리는 폭풍우 말입니다.

 

어머니는 제 모든 것이셨습니다.

특히 제 부모가 돌아가시고,

 

다른 친형제들도 사명으로

형제 모두가 멀리 떠나고,

 

또 사랑하는 마루잠 마저 베드로가

데리고 가서 없어진 뒤로는

더 그렇습니다.

 

 

이제 저는 혼자인데,

가장 심한 폭풍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성모님의

발 앞에 엎드리며 한층 더

크게 운다.

 

성모님은 그에게로 몸을 굽히시고

흐느낌으로 인해 흔들리는 머리에

한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신다.

 

"아니, 그러지 말아라.

왜 내게 고통을 주느냐

 

네가 십자가 아래에서

그토록 굳세었었는데,

 

그것은 예수의 엄청나게 큰

수난으로도 백성들의 악마 같은

 

증오로도 비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었는데 말이다!

 

 

그 시간에 예수를 위로하고

내 기운을 돋우어 주기 위해

그토록 굳세었었는데!

 

그런데 오늘은 반대로,

이렇게도 맑고 고요한

이 안식일 저녁에,

 

내가 예감하는

가까이 다가온 기쁨을

누리고 있는 내 앞에서

 

그렇게 혼란에

빠지다니! 진정해라.

 

우리 둘레와

내 안에 있는 것을 본받아라.

아니 그보다도 그것과 일치해라.

 

모든 것이 평화롭다.

그러니 너도 평화로워라.

 

올리브나무들만이 가볍게

살랑거리는 소리로 이 시간의

절대적 고요함을 깨고 있다.

 

 

그러나 이 가벼운 소리는 하도

조용해서 집 둘레를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

 

또 어쩌면 천사들이 이 주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 생애의 특별한 순간에

있을 때 천사가 하나, 혹은 여럿이

항상 내게 가까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자렛에서 하느님의 성령께서

내 동정녀의 태에 아기를 잉태하게

했을 때도 거기 있었고,

 

요셉이 내 상태 때문에,

또 내게 대해 취해야 할

태도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고 주저하고

있을 때 그의 집에서도 있었다.

 

 

또 베들레헴에서는

예수가 태어났을 때와

 

우리가 이집트로

피난해야 했을 때,

이렇게 두 번 걸쳐 왔었다.

 

또 이집트에서는 팔레스티나로

돌아오라는 명령이

우리에게 내렸을 때와

 

그리고 천사들의 왕 자신이

부활하자마자 내게 왔었기 때문에

천사들이 내게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안식일 다음 날 아침

경건한 여인들에게 나타나서

 

너와 베드로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라는 명령을 주었다.

 

 

천사들과 빛이

내 생애와 예수 생애에

결정적인 순간에 와 있었다.

 

빛과 열렬한 사랑이 하느님의

옥좌에서 하느님의 종인

내게 내려오고,

 

내 마음의 왕이시며 주님이신

하느님께 올라가서

 

나를 하느님과 결합하고,

하느님을 내게 결합 시킴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쓰인 것을

 

이루어지게 했고,

또 하느님의 비밀을 덮는

빛의 장막을 만들어서,

 

사탄과 그의 종들이

강생의 숭고한 신비를

 

알맞은 시기 전까지

알지 못하게 했다.

 

 

오늘 저녁에도,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천사들이

내 둘레에 있는 것을 느낀다.

 

또 내 안에, 내 마음속에

빛이 커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내가 그리스도를 잉태했을 때,

그리스도를 낳았을 때,

 

나를 둘러쌌던 것과 같은

견딜 수 없는 빛을.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사랑의 정열보다

더 강한 사랑의 정열의 빛을.

 

나는 이와 같은 사랑의 힘으로,

때가 되기 전에,

 

말씀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사람이 되고 속죄 자가 되게 했다.

 

 

 

(중략)

 

 

요한은 여전히 불안해하면서도

성모님의 말씀을 듣고 좀

진정되었다.

 

성모님의 말씀이 끝날 무렵에

성모님을 넋을 잃고 쳐다보며,

 

성모님의 얼굴처럼

대단히 창백한 얼굴이 된 채

그도 역시 탈 혼 된 것 같다.

 

성모님의 창백함이 천천히

지극히 하얀빛으로 변하니,

 

요한은 성모님 곁으로 달려가

부축하며 동시에 외친다.

 

"어머니는 예수님이 다볼산 위에서

빛나게 변모하시던 때 모습과

같으십니다!

 

 

어머니의 육체는 달같이 빛나고,

어머니의 옷은 아주 하얀 불꽃

앞에 놓인 금강 석판처럼

반짝입니다!

 

어머니는 이미

사람이 아니십니다!

 

육체의 무게와

불명확함이 사라졌습니다!

어머니는 빛이십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신 외에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저기 다볼산 위에서도,

올리브 동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도,

 

당신이 스스로 움직이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스스로

움직이실 수 없습니다.

 

 

자, 오십시오, 제가 어머니를 도와

어머니의 지친 복되신 육체를 침대에

뉘어 드리겠습니다. 쉬십시오."

 

그리고 지극히 다정스럽게

초라한 침대 곁으로 모시고 가니,

 

성모님은 겉옷도 벗지 않으신 채

침대에 누우신다.

 

양팔을 가슴에 포개 얹고

사랑으로 빛나는 온화한 눈에

눈꺼풀을 내리시며,

 

당신에게로 굽히고 있는

요한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서는 내 안에 계시다.

 

내가 하느님을 주시하고

하느님의 포옹을 느끼는 동안,

 

너는 특히 이 시간에 내게 관계되는

시편과 성경 부분들을 읽어라,

 

 

지혜의 성령께서

네게 일러주실 것이다.

 

그런 다음 내 아들의

기도문을 외고,

 

알리러 온 대천사의 말과

엘리사벳이 내게 한 말을

되풀이해 주고,

 

내 찬미의 노래도

되풀이해 다오.

 

… 나는 이 세상에서

아직 내게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

너 하는 대로 따라 하겠다…."

 

요한은 마음에서

올라오는 울음과 싸우고,

 

그를 어지럽게 하는 마음의 동요를

억제하려고 애쓰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리스도의 목소리와 아주

비슷하게 된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로

시편 118편을 시작한다.

 

그 목소리가 비슷한 것을

알아차리시고

 

성모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옆에 예수가 있는 것 같구나!"

 

요한은 시편 118편을 거의 다 읽고,

그다음엔 41편의 처음 세 절과

 

38편의 처음 여덟 절,

22편과 제1편을 읽는다.

 

 

그런 다음 주기도문을 외고,

가브리엘과 엘리사벳의 말을

되풀이하고,

 

토비아의 찬가와 집회서

24장 11절부터 34절까지를 읽는다.

 

끝으로 '마니피캇'을 시작한다.

그러나 9절에 이르렀을 때 요한은

 

성모님이 숨을 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마치 목숨이 멎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신 것처럼

 

자연스러운 자세와 태도를

지니신 채 미소를 머금으시고

조용히 계셨다.

 

 

요한은 비통하게 부르짖으며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침대 가에 몸을 대고

여러 번 성모님을 부른다.

 

요한은 성모님이 그에게

대답하실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이제는 육체에 생명을 주는

영혼이 떠났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초자연적인 기쁨을

간직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성모님의 얼굴로 몸을 굽힌다.

 

 

그리고 그 우아한 얼굴과

아주 조용히 십자 모양으로

 

가슴에 포개진 깨끗한 그 손 위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진다.

 

이것이 성모님의 육체를 씻는

유일한 목욕이다.

 

사랑의 사도요 예수께서

양자로 주신 사도의 눈물.

 

처음의 격렬한 고통이 지난 다음,

요한은 성모님의 소원을 기억하고

 

침대 가에 늘어져 있는 넓은

겉옷 자락들을 모으고,

 

베개 양쪽으로 늘어져 있는

베일 자락도 모아서,

 

겉옷 자락은 몸 위에 펼쳐 놓고,

베일 자락은 머리 위에 펴 놓는다.

 

 

성모님이 이제는 석관(石棺) 위에

누워 있는 흰 대리석상 같으시다.

 

요한은 오랫동안 성모님을

들여다보는데,

 

그가 보고 있는 동안 그의

눈에서는 또 눈물이 떨어진다.

 

그런 다음 요한은 쓸데없는 가구는

모두 치워서 방을 다르게 배치한다.

 

그는 침대와 벽에 기대 있는

탁자만을 그대로 두고,

 

탁자 위에는 유물들이 들어있는

궤를 얹어 놓는다.

 

등 없는 의자 하나를 옥상 정원

쪽으로 나 있는 문과 성모님이

누워 계신 침대 사이에 놓는다.

 

 

그리고 등잔이 놓여 있는

까치발 달린 탁자가 있는데,

 

이제는 어두워지기 시작하므로

요한은 등잔에 불을 켠다.

 

그런 다음 겟세마니 동산으로

내려가서 그가 찾아낼 수 있는 한

 

많은 꽃과 올리브 열매가 벌써

맺힌 올리브 나무 가지를 꺾는다.

 

그는 작은 방으로 다시 올라가서

등잔 불빛으로 꽃과 가지들을

성모님 시신 둘레에 늘어놓는다.

 

성모님의 시신은 커다란

화관 가운데 놓여 있는 것 같다.

 

 

요한은 이 일을 하는 동안

마치 성모님이 그의 말을

들으실 수 있는 것처럼

누워 계신 분께 말한다.

 

"어머니는 항상 골짜기의 백합꽃,

우아한 장미꽃, 아름다운 올리브,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

거룩한 밀이삭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저희에게

어머니의 많은 향기를 주셨고,

 

생명의 기름과

힘센 사람들의 포도주,

 

그것을 제대로 먹는 사람들은

정신을 죽음에서 보호하는

빵이었습니다.

 

 

어머니처럼 소박하고 깨끗하고,

어머니처럼 가시가 있으면서도

 

평화로운 이 꽃들은

어머니 둘레에 잘 어울립니다.

 

이제는 이 등불을

가까이 갖다 놓겠습니다.

 

이렇게 어머니 침대 곁에

갖다 놓고서 어머니를 지키고,

 

제가 어머니를 지키는 동안

동무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저는, 적어도 제가 기다리는

기적 중의 하나를 기다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https://cafe.daum.net/xp8046/YXD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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