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5. 06:33ㆍ카르마의 영혼
<너희는 이 거룩함에 순종하여라>
진공 속 우주공간과 시간은
속도에 의한 변화로 존재가 되는
물질 에너지다.
공간 속에서 시간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 에너지이므로
시간은 물체적 에너지의
가치와 같은 것이다.
공간과 시간과 속도의
관계로 인해 에너지가 질량을
획득하고 존재로서 출현하게 되면
이 존재는 관찰자의 관점으로
개입하려는 자아가 형성되고
이것이 존재로 바뀌면서
존재와 존재 간의 관계가
나타난다.
사물은 관계 속의 그림자다.
즉 환상이다.
자아 적 존재는 환상과
관계하고 있을 뿐이다.
이 타인과 존재의 관계에서
나의 자아가 나타난다.
거울에 자신이 비치듯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이
생성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관계가 없으면 자신의
모습(자아 존재)을
알아차릴 수 없고 볼 수 없다.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내 이마에 붙은 카드 패를
읽을 수 있듯
우리는 타인의 표정 속에
나의 카드 패를 읽으며 살아간다.
우주와 자연의 궁극적 원리가
진동하는 끈으로 본
초끈 이론처럼
공간과 시간과 속도에 의한
에너지의 진동 속에
관찰자로 개입하려는 자아가
존재로 바뀌면서 관계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까지가 우주 에너지에 대해
지금까지 알아낸 4%의
과학적 접근 이론이다.
이 진동하고 있는 에너지의
방향적 흐름과 설정과
이것을 존재케 하고 실존케 하는
가늠하지 못하는 미지의 힘은
신의 영역으로 넘겨야 함을
과학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비록 2001년 7월 발사된
2002년에 우주 온도를 측정한
그 빛의 정보가
2022년에 우리 망막에
도착한 내용에는
빅뱅 후 38만 년이 지나고
지금부터 137억 년 전 우주의 출연과,
지구의 역사는 약 45억년이고
지구상 생명의 흐름은
약 35억 년이란 것과,
지구의 사계절과 동서남북과
위아래와 공전과 자전과
23.5도 기울어짐이
있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은
증명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존재케 되기까지의
흐름과 방향의 내력은 증명되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결정된 것만을 관찰하고
증명해서 현재 이렇게 되어 있다는
4%적 앎의 표현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결정지어진 흐름과
방향의 내력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약 태양계를 지구와 같이
공전하고 있는 8개의 거칠고
척박한 미완성 행성들 모두가
지구와 같은 단 한 개의
생명체 행성의 완성을 위한
주춧돌 같은 실험적 내력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라면
과학은 어떤 입증을 증명으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도 '그렇게 되다 보니
이렇게 되어 있고 될 수밖에 없다'라고
또 증명만 하려 할 것인가?
어두운 밤하늘에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저 촛불 색 노란
둥근 달빛은
인간은 겸손하고 겸손해서
이 거룩함에 순종하라며
신기하고 신비한 달빛의
흐름과 방향을 고정시켜 놓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 거룩함의 힘에 우리는
경외심으로 복종해야 할 것이다.
간접인용 : 박문호 박사
-존재의 출현-
'카르마의 영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모님 스테파노 시신 거두심 (0) | 2024.04.15 |
---|---|
베냐민(스테파노)의 죽음 (0) | 2024.04.15 |
기적과 부활의 수학적 증명 (0) | 2023.05.29 |
토마 복음서 [마지막] (1) | 2023.05.25 |
토마 복음서 [4] (1) | 2023.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