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손한 자를 위한 가르침

2022. 10. 27. 10:01카르마의 영혼

 

<불손한 유다를 위한 가르침>

 

 

유다는 예수와

같이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욕망은

스승의 반대에 부딪친다.

 

"유다야, 밤 시간에는

혼자 있고 싶다.

 

밤 동안에 내 영은

아버지에게서 영양분을 얻는다.

 

기도와 묵상과 고독이 내게는

물질적인 음식보다 더 필요하다.

 

영으로 살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활을 하게 인도하고자 하는

사람은 육체는 뒤로 젖히고

 

모든 정성을

영에 기울여야 한다.

 

 

유다야,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정말 하느님께,

즉 초자연적인 것에 속해 있기를

원하면 네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선생님,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세상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온 정성을 영에 기울이고

육체는 돌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죽이지 말아라' 하시는 하느님의

계명과 반대가 되지 않습니까?

 

 

이 계명은 자기를

죽이는 것도 금하지 않습니까?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사랑해야 합니까?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까?"

 

"네게는 순진한

사람과는 다르게 대답하겠다.

 

순진한 사람은 영혼이나

영의 눈을 초자연적인 영역에까지

들어 올리기만 하면

 

우리와 같이 영의 영역으로

날아 올라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너는 순진한 사람이 아니다.

너는 너를 세련 강화되게 만드는

분위기 속에서 교양을 쌓았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그 번쇄(煩鎖)한 이론과 원리로

네게 때를 묻히기도 했다.

 

유다야, 솔로몬을 기억하느냐?

그는 지혜로웠다.

그 시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그 시대의 모든 학문을

탐구하고 나서 무엇이라고

말하였는지 기억하느냐?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람으로서 할 일이 전부다.'

 

 

음식 문제에 있어서도

영양이 되는 것은 먹고

 

독약은 먹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네게 해주겠다.

 

만일 어떤 음식이

그것을 중화시킬 수 있는 우리의

자연 체액보다 강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해로운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우리에게 해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맛있다 하더라도

포기해야 한다.

 

 

보통의 빵과

샘에서 직접 길어 온 물이

 

몸의 균형을 깨뜨리고 중독시키는

향신료를 진하게 사용한

 

복잡한 왕의 식탁

음식들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

 

"선생님,

무엇을 피해야 하겠습니까? “

 

"너를 어지럽게 한다고

여기는 것은 모두 피해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이 평화이시고,

만일 네가 하느님의 오솔길에

들어서길 원한다면,

 

네 영과 마음과 육체에서

평화가 아닌 모든 것,

 

혼란을 가져오는 모든 것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소행을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도우려고 여기에 왔다.

 

나는 사람이 다시

하느님의 아들이 되고,

 

자신을 제2의 창조와

자신이 원하는 자생(自生)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도우러 여기 왔다.

 

 

그러나 네가 내 탓으로

잘못된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도록

 

네가 물은 것에

대답할 수 있게 가만히 있어라.

 

자살이 참다운

살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생명이건, 남의 생명이건,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그것을 빼앗아 갈 권리는 오직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만 있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기가

교만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교만은 하느님께서 미워하신다. ''

 

 

"교만하다는 것을 인정하다니요?

저는 차라리 실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실망이란 것도

교만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유다야,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사람이 왜 실망을 하느냐?

 

불행들이 악착같이 그에게 달려들고,

그 사람은 자기 힘을 가지고는

 

그것을 교묘하게 피하는 데

성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나 저 경우나 교만이

그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자기 자신밖에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께 손을 내밀고 그분께

 

'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바라고 기대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주시니,

 

저를 도와주십시오’하고 말할

겸손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하실 수 없다'라고

말하는 또 다른 사람도

 

 

하느님을 그의 척도로 재서,

그가 모욕한 것처럼

 

모욕을 당한 사람이

용서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교만한 것이다.

 

겸손과 사랑은

그가 받은 모욕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더라도 동정하고 용서한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는 또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 죄를 지었으니,

 

죄 많은 당신의 아들을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말할 줄

모르기 때문에 교만한 것이다.

 

 

그러나 유다야,

진실하고 뉘우치고 겸손하며

 

선 안에 다시 살아나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간청하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어떤 죄는

용서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

 

 

"그것은 네가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정말,

정말 잘 들어두어라.

 

아무리 큰 죄를 지은 뒤에도

죄지은 사람이 아버지의 발아래

달려가서 울고 용서해 주시기를

 

애걸하면서 실망하지 않고

속죄하겠다고 스스로 나서면,

 

아버지께서는 그가 용서를

받을 일을 하게 하고

그의 영을 구할 힘을 주실 것이다.

 

유다야, 이 때문에 그분이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이니,

무한한 완전하신 아버지이시다. ''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카르마의 영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재는 창조가 진보한 결과다  (0) 2022.11.04
중대한 진리들  (0) 2022.11.01
저울이 악에 기울지 않게 하여라  (0) 2022.10.24
물 항아리 포도주 기적의 열쇠  (0) 2022.10.20
거룩한 두려움  (1) 2022.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