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 06:05ㆍ카르마의 영혼
<선이 없는 알쏭달쏭 미개인>
선을 몰라서,
선의 반대 악의 행동으로
가는 무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과 또는
윤리 법칙을 알지 못하고
알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에게 아무도 선의 양식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기에
굶주린 사람처럼,
진리의 영양을 찾지 못해
굶주림에 무기력하게 됩니다.
(중략)
세상에 많은 사람이
지식으로는 많이 압니다.
그러나 굳게 믿는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합니다.
마치 서로 적대적인 두 진영
사이에 끼어 있는 것처럼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아무것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힘을 다 써버립니다.
이들이 우유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또 그리고’ 하고
말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후에는 이렇게 됩니까?’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내가 실패하면요?’하는
말을 계속해서 묻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우유부단해서,
매달릴 데를 발견하지 못하기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발견하더라도 여기저기에
매달리는 바람에,
그들을 받쳐 주어야 할 뿐 아니라,
하루 동안 만에도 새로운
기회나 시기를 만날 때마다
붙들게 해서
올라가게 해야 합니다.
오! 정말이지 그들은 발육이
뒤떨어진 어린이보다 더 많은
참을성과 자선심을 단련시킵니다.
하지만 제발 그들을 버리지 마시오!
그 자신과 그들의 알쏭달쏭 병에
사로잡혀 있는 그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빛나는 믿음 전부와
열렬한 사랑 전부를 주시오.
진저리 내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저 우유부단한 사람들에게 선생이
되어 주고 아버지가 되어 주시오.
그 사람들이 여러분을
낙담하게 합니까? 그래도 좋습니다.
여러분도 수없이 나를 낙담시키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더 낙담시킵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 말하고
듣고 있는 지금도,
사람들은 아직도 망설이고 있으므로
말씀이 사람이 된 것이,
쓸데없는 일 같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 나보다,
자기 자신이 더 나은 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그러므로
‘그렇지만’, ‘만약’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감옥의
문을 열어 주시오.
‘내가 할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성공 못하면?’하는
따위의 사슬을
그들에게서 풀어 주시오.
그들이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만족하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믿게 하시오.
또 그들이 받침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거든,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여러분이 다시 일으키시오.
그 아이들이 넘어지게 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일으키고, 털어주고,
위로하고, 또 넘어질 염려가
없을 때까지 붙잡아 주는
어머니들이 하는 것처럼
같이 하시오.
그런데 어머니들은
아이의 다리가 약하면
몇 달이고 몇 해고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을 모욕하는 사람을
용서해서, 정신이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주시오.
모욕은 사랑의 반대입니다.
사랑에 반대되는 것은
하느님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므로 모욕을 하는 사람은
옷을 벗었고,
그가 모욕을 준 사람의 용서만이
그에게 하느님을 다시 주기 때문에
그 헐벗음에서 옷을 다시
입혀주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욕당한 사람이
용서하는 것을 기다려
용서하십니다.
모욕을 당한 사람도 용서하시고,
모욕을 한 사람과 하느님을
모욕한 사람도 용서하십니다.
이렇다는 것은, 정말이지,
주님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면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모욕당한 사람이 용서하면,
하느님께서는 이웃도 용서하십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한 그대로
여러분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받고 싶으면 용서하시오.
그러면 마치 여러분의 거룩한
어깨에, 별로 만든 겉옷을
걸쳐 주듯,
여러분이 베푼 사랑 때문에
하늘에서 복을 누릴 것입니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오.
그들은 생활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고,
애정 때문에 마음이 상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마치 요새에
틀어박혀 있듯, 여러분의
평온 속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어버이를 여읜 사람의 빈 마음을
채워 줄 줄을 아시오.
고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되어 주고,
부모에게는 자식이 되어 주고.
서로서로 형제가 되어 주시오.
사랑하시오. 왜 행복한
사람들만 사랑합니까?
그들은 이미 그들 몫의
태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는 사람들을 사랑하시오.
그들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덜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눈물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슬픔 속에 체념하고 있으면,
그들을 사랑하시오.
그들이 고통 때문에 반항하면
그들을 한층 더 사랑하시오.
비난하지 말고,
그들이 고통을 당할 때,
고통이 유익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그들을 다정스럽게 대하시오.
그들은 눈물의 장막을 통해
하느님의 얼굴을 삐딱하게 보아서,
그 얼굴은 온통 복수심에 불타
폭력자의 표정으로
몰아붙일 수 있습니다.
아니, 눈살을 찌푸리지 마시오!
그것은 고통으로 인한 흥분으로
모두 환각(幻覺)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도록
그들을 흔드시오.
여러분의 싱싱한 믿음이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얼음찜질처럼 되도록 하시오.
그리고 흥분의 절정기가 지나고,
심한 충격을 받은 사람이
쇠약해지고 얼이 빠지고
넋을 잃게 되면,
그때는 병 때문에 발육이 늦어진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마치 새로운 일에 대해 말하듯
천천히 참을성 있게 다시
하느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시오…
오! 사람이라는
영원한 어린이를 위한,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입을 다무시오.
강조하지 마시오.
…영혼은 저 스스로
몹시 애를 씁니다.
그 영혼을 애무와
기도로 도와주시오.
그리고 그 영혼이
‘그럼, 그것이 하느님이 아니었나요?’
하고 말하면,
‘아니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된
사람까지 포함해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해치길 원치 않으십니다’
하고 말하시오.
그리고 영혼이
‘그렇지만 난 하느님을 비난했습니다’
하고 말하거든,
‘그것은 흥분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걸
잊어버리셨어요’ 하고 말하시오.
그리고 영혼이
‘그럼, 나도 하느님을
모시고 싶어요’ 하고 말하거든,
‘여기 계셔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문을 열어 주길
기다리시면서
당신의 마음 문 앞에 와
계십니다’ 하고 말하시오.
성가신 사람들을 참고 견디시오.
그런 사람은,
길가는 손님이
우리가 사는 집을 어지르듯
우리 자아의 작은 집을
어지르러 옵니다.
그러나 길손들을 받아들이라고
내가 말했듯, 이 성가신
사람들도 받아들이시오.
그들이 성가신 사람들입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그들이 여러분 일을 방해한다 해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여러분을 혹은 많이,
또는 적게, 어떻게든 사랑합니다.
그래서 오는 것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그들을 받아들이시오.
또 그들이 조심성 없는
질문을 하거나
그들이 미워한다는
것을, 말하거나
여러분을 모욕하더라도
참을성과 사랑을 보이시오!
여러분의 참을성으로
그들을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는데,
여러분의 사랑이 없음으로써
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 스스로 죄를
짓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지요.
그러나 그들을 죄짓게 하고,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죄짓는다는
것을, 더 괴로워하시오.
만일 여러분이 그들을
여러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나중에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당신의 초자연적 애무로
언짢은 추억을 지워 주심으로써
여러분에게 보상을 주실 것입니다.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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