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애제자의 피신과 방출

2023. 2. 2. 07:04카르마의 영혼

 

<수 애제자의 피신과 방출>

 

 

 

비가 오는

겨울 아침나절이다.

 

예수께서 벌써 일어나셔서

당신 작업장에서 일을 하신다.

 

작은 물건들을 만들고 계시는데

한구석에는 새 베틀이 하나 있다.

 

새것으로 별로 크진 않지만

잘 만들어진 베틀이다.

 

성모님이 김이 나는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오신다.

 

“예수야, 마셔라.

네가 일어난 지 제법 오래됐지?

날씨가 습기가 차서 춥다 ….”

 

“예. 그러나 어머니,

저는 모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 1주일 동안 명절 때문에

일이 마비되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목수 작업대 위에,

비스듬히 앉으셔서 양젖을 드신다.

 

그동안 성모님은

베틀을 살펴보시며 어루만지신다.

 

“어머니께서 베틀에 강복하십니까?”

하고 예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아니다, 네가 이것을

만들었기 때문에 만져보는 거다.

 

강복이야,

네가 이걸 만들 때 주었겠지.

네가 좋은 생각을 했다.

 

 

이것은 신디카에게

매우 소중히 사용될 거다.

 

신디카는 베짜기에

매우 재간이 있단다.

 

그리고 이것은

신디카가 여인들과 처녀들을

가까이하는데 도움이 될 거다.

 

다른 것 또 무엇을 했느냐?

선반(旋盤) 옆에 올리브나무 같은

나무조각들이 보이니 말이다.”

 

“요한에게 유익한

물건들을 만들었습니다.

 

보세요.

철필(鐵筆)을 넣을 상자와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탁자도 있고요.

 

그리고 요한이 책을 넣을 수 있는

뚜껑이 비스듬한 책장이 있어요.

 

 

만일 요나의 시몬이

작은 마차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런 것들을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물건들을

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작은 물건들을 만들면서 제가

 

그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저 사람들을

멀리 보내는 것이 괴롭지?”

 

“괴롭습니다. … 저 때문에도,

저 사람들 때문에도.

 

저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폴피레아(배드로의 처)와 같이

도착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 지금이 말할 시간입니다.

날마다 제 마음을 찍어 누르고,

 

수많은 등불 빛까지도

음산하게 하던 고통입니다.

 

… 지금은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야 하는 고통입니다.

 

…아! 어머니, 저는 이 고통을

저 혼자만 당하고 싶었습니다….”

 

“착한 내 아들!”

 

성모님은 예수를 위로하기 위하여

그의 손을 어루만지신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예수께서 말씀을 다시 하신다.

 

 

“요한은 일어났습니까?”

 

“그래. 그가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부엌에서 양젖을

마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엾은 요한!…”

 

눈물 한 방울이

성모님의 뺨으로 흘러내린다.

 

예수께서

일어나신다.

 

“그리 가겠습니다.

… 가서 말을 해야 합니다.

 

신디카 하고는

말이 좀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경우에는…,

어머니, 마륵지암에게 가셔서 깨워서

 

제가 저 사람에게 말하는 동안

함께 기도하십시오.

 

… 그의 내장을

후벼 파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 제가 그를 죽이거나

그의 정신생활을 마비시키거나

할 수도 있습니다.

 

… 참으로 괴롭습니다,

아! 아버지! … 가겠습니다”

 

그러시면서 정말로

짓눌린 모습으로 나가신다.

 

 

예수께서는 작업장에서 요한의

방으로 가는 몇 걸음을 가신다.

 

그 방은 요나가 죽은 바로 그 방,

즉 요셉의 방이다.

 

예수께서는

화덕에서 나뭇단 하나를 가지고

돌아오는 신디카를 만나셨는데,

 

신디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예수께 인사한다.

 

예수께서는 생각에 잠기신 채

그리스 여자 신디카의 인사에

답례하시고는

 

꼼짝하지 않으시고

겨우 꽃망울이 앉기 시작한

백합꽃 화단을 내려다보신다.

 

그러나 그것들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 그러다 결심하신다.

예수께서 돌아서시며

요한의 방문을 두드리신다.

 

 

요한이 나타나는데, 예수께서 그를

만나러 오신 것을 보고는

그의 얼굴 전체가 환해진다.

 

“네 방에 잠깐 들어가도 되겠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오! 선생님! 그야 언제든지!

저는 선생님께서 어제저녁

 

조심성과 순종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적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이것을

보아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심성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한 것 같으니까요.”

 

예수께서는 이미 정돈이 잘 된

작은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 방에는

늙은 교사의 편리를 위해

작은 탁자 하나를 들여놓았다.

 

예수께서는 양피지 위로

몸을 숙이시고 읽으신다.

 

“썩 잘 썼다.

제대로 옮겨 썼다.”

 

“보십시오. 저는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내일에 대해,

그리고 자신 육체에 대해

 

걱정해선 안 된다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일에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까지 의 조심성이,

 

덕행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생각같이 보였습니다.

 

 

물론 이 틀린 생각도

저에게서 오는 것이지만요.”

 

“아니다. 너는 잘못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이기주의자의

지나치고 겁에 질린 걱정과

 

의인의 조심성 있는

배려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결코 누리지 못할지 모르는

내일에 대한 인색함은 죄다.

 

그러나 자기의 빵을 보장하고,

기근이 드는 시기에

 

부모를 위한 빵을 보장하려고

절약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자신의 육체를

이기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들 육체를 걱정하라고 요구하며,

 

그로 인해 자기 육체가

고통을 당할까 봐 무서워하며

 

자기는 일체 노력도 하지 않고

희생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죄다.

 

그러나 조심성 없음으로 인해

가족에 짐이 되고,

 

우리를 위해

유익한 일에서 손실이 되는

무익한 병에 걸리지 않게

 

육체를 보호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셨다.

이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이다.

 

우리는 생명을 무모하지 않게,

또 이기주의를 가지지 않고

거룩하게 써야 한다. 알겠느냐?

 

때로는 어떤 행동들이

순전히 조심성에 지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사실의

결과에 지나지 않음에도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비열한 행동이나 변덕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조심성이 그런 행동을 하도록

권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만일 내가 지금

네게 해를 끼칠 수 있을

사람들 가운데로…

 

가령 네 아내의 부모라든지

네가 일했던 광산을 지키는

사람들 가운데로 보낸다면,

 

내가 잘하는 일이겠느냐

잘못하는 일이겠느냐?”

 

“저는… 저는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저의 너무나 큰 부덕(不德)이

너무 강한 시련을 받는

 

위험이 없는 다른 곳으로

보내시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됐다. 너는 지혜롭고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네가 전에

있었던 비티니아나 미시아에는

너를 절대로 보내지 않을 것이고,

 

또 비록 네가 정신적으로

그곳에 가기를 희망했어도

친티움에도 결코 보내지 않겠다.

 

네 정신이 그곳에서는

수많은 인간적 냉혹함에 찍어 눌려

퇴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심성은

나와 이웃의 영혼들과

 

너 자신의 영혼을 위해

유익하게 다른 곳으로

보낼 수가 있는데,

 

네가 무익한 존재가 될 곳엔

보내지는 말라고 가르친다.

그렇지 않으냐?”

 

 

엔도르의 요한은

운명이 그에게 무엇을 결정해 놓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팔레스티나 밖으로 파견되는

가능성에 대한 예수의 암시를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그의 얼굴을 살펴보시고,

그가 침착하고 당신 말씀을

듣는 것을 기뻐하고

 

다음과 같은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대답으로 보시고 아신다.

 

“선생님, 물론 저는 다른 곳에서

더 쓸모 있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

‘저는 나쁜 본보기를 준 곳에서

좋은 본보기를 주기 위해

 

이방인들 가운데

갔으면 합니다’ 하고 말하고 나서는

 

그 말을 한 것을 자책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선입관의 대상이니까

 

이방인들 가운데

가는 것은 좋을 거다.

 

그러나 친티움에도 안 되고,

네가 죄수 모양으로 또는

늑대 모양으로 살았던

 

황량한 산에 가도 안 되고,

납 광산과 귀한 대리석을 생산하는

채석장에 가도 안 된다.

 

절대적인 희생에 대한 갈망으로도

그곳에 가서는 안 될 것이다.

 

네 마음이 여러 가지

견디기 어려운 추억으로

혼란에 빠지겠기 때문이다.

 

 

또 만일 네 정체가 드러나면,

혹 네게 덤벼들지는 않는다더라도

 

그들은,

[살인자야, 입 닥쳐라.

우리는 네 말을 들을 수가 없다]

고 말할 것이다’하고,

 

저 혼자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올바른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조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겠지.

나도 조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과 같은 사도직의

피로를 네게 덜어 주었고,

 

이곳의 휴식과

평화 속으로 너를 데려왔다.”

 

“오! 그렇습니다!

얼마나 큰 평화입니까!

 

제가 여기서 백 년을 산다 해도

이 평화는 항상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떠나게 되면

이 평화를 가지고 가겠습니다.

저세상까지도 가지고 가겠습니다.

 

… 저는 사람이니까

추억이 아직 제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 있을 것이고,

 

모욕이 저를

괴롭힐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저를 미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움이 가장 멀리 떨어져 나갔고,

 

그 새싹까지도

거세(去勢)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가장 경멸할 동물로 생각하던 제가

 

이제는 여자에 대해서까지도

반감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님은 문제 밖입니다.

저는 어머님을 뵙자마자 존경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님이 다른 모든 여자와

다르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은 여자의 향기십니다.

그러나 거룩한 여자의 향기십니다.

 

누가 가장 순수한 꽃향기를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른 여자들,

클레오파의 마리아와 엘리사 같이

 

슬픔의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참을성 있고,

 

그렇게도 철저히 생활을 바꾼

막달라의 마리아같이 용감하고,

 

마르타와 요안나같이

우아하고 순결하며,

 

신디카와 같이

온전한 사고력을 가지고,

 

온전하게 올바른 생각을 가진,

의젓하고 영리하며,

 

모두 애정 가득한

착한 제자들인

 

다른 여자들도

저를 여자와 화해시켰습니다.

 

 

선생님께 고백합니다만

저는 신디카가 제일 좋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유사함이

신디카가 제겐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 같고,

 

처지가 비슷한 점도

그렇습니다.

 

신디카는 노예였고,

저는 죄수였다는 신분의 유사성도,

 

그로 인해 다른 여자들과의 차이로

가지지 못하는 신뢰를 그에게서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신디카가 제게는 안식이 됩니다.

제가 신디카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제가 그를 어떻게 보는지는

정확히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신디카에 비해 나이가 많은 저는

그를 딸로 보기도 합니다.

 

제가 가지기를 바랐던

총명하고 근면한 딸로요…

 

신디카가 온갖 애정을 기울여

보살피는 병자인 저,

 

일생 동안을

어머니를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모든 여자에게서

어머니인 여자를 찾았었지만

 

찾아내지 못한

침울하고 외로운 저는

 

신디카에게서 제가 꾸었던

꿈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지친 제 머리와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제 영혼에 모성애의

이슬이 내리는 것을 느낍니다.

 

… 신디카에게서 딸과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면서 저는 그에게서

여자의 완전을 느끼고,

 

또 신디카 때문에

여자에게서 왔던 모든 고통을

용서한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불가능한 일이지만

제 아내였지만 제가 죽였던

그 불행한 여자가

 

혹 우연히 다시 살아난다면

그를 용서해 주리라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악이었거나 선이었거나…

쉽게 다정해지고,

 

몸을 바칠 때는 열렬하게 되는

여자의 마음을 제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네가 이 모든 것을

신디카에게서 발견한 것이

매우 기쁘다.

 

신디카는 네 여생의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고,

 

너희는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할 것이다.

 

그래서 신디카를

너와 결합시키겠다…”

 

예수께서는

요한을 다시 살펴보신다.

 

그러나 피상적 사람이 아닌

이 제자가 눈치를

챘다는 표가 도무지 없다.

 

 

하느님의 어떤 자비가 결정적

순간까지 선고를 그에게

가려놓으신 게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요한이

“저희는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하면서

미소 짓는다는 것이다.

 

“그래. 그리고 너희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과 장소를 따지지 않고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요한은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한

첫 번째 예감을 가진다.

 

그의 얼굴 표정과 안색이 변한다.

그는 심각해지고 창백해진다.

 

하나밖에 없는 그의 눈이 이제는

예수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피며

똑바로 쳐다본다.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신다.

 

“요한아, 내가 어느 날 하느님의

용서에 대한 네 의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느냐?

 

‘네게 자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나는 너를 특별한 자비의

사업에 쓰겠다.

 

그리고 너를 위해 자비에 대한

비유들을 말해 주겠다’고”

 

“예.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를 설득하셨고,

 

바로 자비의 일들을,

그것도 어린아이와 델리시데 사람과

그리스 여자를 가르치는 것과

 

불쌍함을 이해하는, 말하자면 가장

마음을 써야 하는 부분의 일들을

제가 하도록 허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제 참된 뉘우침을 넉넉히 아시고

그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보셨기에

 

죄 없는 영혼들과 개종시켜야 할

영혼들을 제게 맡기셔서

 

당신의 사람을 만들게 하라는 것을

제게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다른 요한에게도 늘

하시는 것처럼 요한을 껴안으시고

당신 곁으로 끌어당기신다.

 

그리고 그에게 줘야 하는

고통 때문에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말씀하신다.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네게

미묘하고 거룩한 임무를 맡기신다.

특별한 사랑의 임무다.

 

 

너그러운 너만이,

편협하지 않고 편견이 없고,

지혜로운 너만이,

 

특히 네가 하느님께 아직 지고

있는 정화(淨化)의 그 나머지 빚,

 

그 빚을 갚기 위해,

모든 포기와 모든 속죄를 받아들인

너만이 할 수 있는 임무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하기 싫어할 것인데,

그들의 생각이 옳은 것이다.

 

그 이유는,

요구되는 그 임무에 그들은 필요한

것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사도 중 아무도

주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한,

네가 가진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 게다가 너는

세례자 요한을 기억하지?

 

그러므로 너는 내 가르침을

미리 알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 너는 네 선생님의 길을

닦을 것이다.

 

… 너는 그처럼 멀리 가지 못하는

선생님을 대리하기까지 할 것이다.

(요한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예수를

정면에서 보려고 예수의 팔에서

빠져나가려고 애쓴다.

그러나 예수의 입이 최후의 충격을

가하는 동안 예수의 포옹은

부드럽지만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 그렇게까지 멀리 …

시리아까지 … 안티오키아에까지 …

가지 못하는 선생을 말이다 ….”

 

“주님!”하고, 요한이 예수의

포옹에서 세차게 벗어나며 외친다.

 

 

“주님! 안티오키아예요?

 

(구글지도)

 

제가 잘못 알아들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제발 그렇게 말씀해 주세요! ….”

그는 서 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눈,

잿빛이 된 얼굴, 떨리는 입술,

앞으로 내민 떨리는 손,

 

그 소리에 짓눌려 땅으로

꺾어진 것처럼 보이는 머리,

 

모든 것이 오직

애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네가 잘못 알아들었다,”고

말씀하실 수가 없다.

 

 

예수께서도 일어나시며

늙은 교사를 품에 안으시려고

팔을 벌리시고,

 

확인하시기 위하여

팔을 벌리신다.

 

“그렇다, 안티오키아에.

신디카와 함께 라자로의 집에.

내일이나 모레 떠나거라.”

 

요한의 슬픔은 가슴을 찢는 듯하다.

그는 포옹에서 반쯤 벗어나,

 

야윈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로 범벅된 젖은 얼굴로

예수의 얼굴을 향해 부르짖는다.

 

“아! 선생님께서는,

저를 데리고 있길

원치 않으시군요!!

 

 

주님, 제가 어떻게 해서

주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포옹에서

벗어나 탁자 위에 엎드려

 

가슴을 찢는 것처럼 고통을 주는

흐느낌으로 몸이 흔들리고, 가끔은

심한 기침의 발작을 일으키면서,

 

예수의 모든 애정의 표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소연한다.

 

“선생님께서는 저를 내쫓으시는군요.

저를 내쫓으시네요,

 

이제 저는 다시는

선생님을 뵙지 못하겠군요 ….”

 

예수께서도 분명히

괴로워하시며 기도하신다.

 

 

…그리고 조용히 나가시다가

부엌문 문지방에서

성모님과 마륵지암을 만나신다.

 

마륵지암은 그 울음소리에

질겁을 했다.

 

그밖에 신디카도 있는데,

역시 깜짝 놀라 서 있다.

 

“어머니, 잠깐 이리 오십시오.”

 

성모님은 얼굴이 매우

창백해지시면서 즉시 들어가신다.

 

두 분이 함께 들어가신다.

성모님은 울고 있는 어른이

마치 가엾은 어린아이인 것처럼

 

그에게로 몸을 숙이시며

말씀하신다.

 

 

“착하고 착한 가엾은 내 아들!

그러지 말게! 몸에 해가 될 걸세.”

 

요한은 엉망이 된

얼굴을 들고 부르짖는다.

 

”선생님께서 저를 내쫓으십니다!

… 저는 멀리서 혼자 죽으려 합니다.

 

… 오! 선생님께서는 몇 달 동안만

기다리셔서 저를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두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이런 벌을 주십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제가 선생님께 난처한 일을

당하시게 했습니까?

 

 

왜 제게 이 평화를 주시고선

이내 … 이내 …”

 

그는 다시 탁자 위에 쓰러져

숨을 헐떡거리며 더 크게 운다….

 

예수께서 들썩거리는 야윈 어깨에

한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신다.

 

“그래, 너는 내가

그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너를 여기 그대로 있지 못하게

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느냐?

 

오! 요한아! 나의 길에는

무서운 필요성들이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 것은 나이다.

 

 

내 고통과 모든 사람의 고통을

짊어진 나이다.

 

요한아, 나를 보아라.

내 얼굴이 너를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인지,

 

네게 싫증이 난 사람의

얼굴인지 보아라.

 

… 이리 내 가슴으로 와서

내 심장이 얼마나 고통으로 뛰는지

들어 보아라. 요한아,

 

내 말을 잘 듣고,

나를 잘못 이해하지 말아라.

 

이것은 하느님께서

네게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요구하시는

 

마지막 속죄이다.

내 말을 들어라.…”

 

그리고 그를 일으켜서

품에 안으신다.

 

 

“이거 보셔요,… 어머니,

잠깐 나가 계십시오.…

 

이제 우리 둘이 만 있으니 들어라.

너는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

 

내가 구세주라는 것을

굳게 믿느냐?”

 

“어떻게 제가 그것을

믿지 않겠습니까?

 

이 때문에 제가 항상 죽을 때까지

선생님과 함께 있기를

원한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내 죽음은 끔찍할 것이다!”

 

“제 죽음 말입니다. 제 죽음이요! …”

 

 

“네 죽음은 내가 너의 곁에 있어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너에게 불어넣어 줄 것이기에,

 

그리고 신디카의 사랑으로,

또 안티오키아에 내 복음을

준비했다는 승리의 기쁨으로

평온할 것이다.

 

그러나 내 죽음은!

너는 내가 상처투성이의

살덩어리가 되고,

 

침투성이가 되고, 모욕을 당하고,

미친 듯 성 난 군중에게 맡겨져서

 

악당의 십자가와 같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을 볼 것이다.

 

… 너는 이것을

견딜 수 있겠느냐?”

 

 

수난 때에 예수께서 당하실 일을

상세하게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하고

신음하던 요한이

 

“안 됩니다” 하고

거칠게 부르짖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게 되면 저는 인간을

다시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젊으시니까 ….”

 

“그런데 나는 등불 명절을

한 번밖에 더 보지 못할 것이다.”

 

요한은 공포에 질려

예수를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내가 너에게

이것을 비밀히 말한 것은,

 

이것이 내가 널 멀리 보내는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런 운명을 가질 사람은

너 하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힘들게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은

 

모두 그전에 다른 곳으로

보낼 것이다.

 

그래도 이것이 너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으로 보이느냐?”

 

 

“아닙니다.

고통당하시는 내 하느님…

 

그러나 저는

선생님을 떠나야 하고…

먼 곳에서 죽어야 합니다.”

 

“진리인 내 이름으로

너에게 약속하겠다.

 

네 임종의 머리맡에

내가 너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제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선생님께서는 너무 멀어서

못 가신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저를

덜 슬프게 보내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지요….”

 

 

“쿠자의 요안나는 레바논산 밑에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나를 보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요안나는 나를 아직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거기서

이 세상의 순박하고 온유한

(원주: 보잘것없는 사람)

생명으로 다시 데려왔다.

 

요안나는 내가 죽는 날 자기가

산 것을 후회하리라는 것을 알아라!

 

그러나 스승으로서의 둘째 해에

내 마음의 기쁨인 너를 위해선

그보다 더한 것을 해주겠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라는 임무를 주면서

 

너를 평화 속으로

데려가기 위해 갈 것이다.

 

 

‘주님의 때가 왔습니다.

마치 지금 땅 위에

봄이 오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천국의 봄이

시작됩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나 혼자

가지는 않을 것이다.

 

… 내가 갈 것이고,

너는 항상 나를 느낄 것이다.

 

…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

 

너는 일찍이

나를 차지했던 것보다도

더 네 안에 나를 차지할 것이다.

 

 

사랑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데,

 

정신뿐 아니라, 관능까지

충격을 줄 수 있을 만큼 넉넉히

느껴지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아,

이제는 좀 안심이 되느냐?”

 

“예, 주님,

그러나 정말 괴롭습니다!”

 

“그래도 반항은 하지 않는구나.…”

 

“반항하다니요? 절대로 안 합니다!

그랬다간 선생님을 완전히 잃게요.

 

저는 늘 ‘제’ 주기도문을 욉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네가 나를

이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비록 진정은 되었지만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는

그의 뺨에 입맞춤하신다.

 

“아이에게 인사를 해도 되겠습니까?

… 이것은 또 하나의 다른 고통입니다.

 

… 저는 그 애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눈물이 더 세게 흐른다.

 

“그래. 그 애를 곧 부르마.

…그리고 신디카도 부르겠다.

신디카도 괴로워할 것이다.

 

… 너는 남자이니,

네가 신디카를 도와야 한다…. “

 

“예, 주님.”

 

예수께서 나가신다.

 

 

그동안 요한은 울면서 그를

거두어준 작은 방의 벽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어루만진다.

 

성모님과 마륵지암이

함께 들어온다.

 

“아이고! 어머님! 들으셨습니까?

어머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있었네,

그리고 가슴 아파하고 있었네.

 

… 그러나 나도 예수와 헤어졌네.

…그런데 나는 어미일세 ….”

 

“맞습니다!… 마륵지암아,

이리 오너라. 내가 떠난다는 거,

 

그리고 우리가 이젠 다시

보지 못한다는 걸 아니? …”

 

 

그는 용맹하고자 한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안고 침대 가에

앉아서 운다.

 

마륵지암의 갈색 머리에 대고 운다.

마륵지암도 따라서 울려고 한다.

 

예수께서 신디카와 같이 들어오신다.

신디카는 말한다.

 

“요한, 왜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리세요?”

 

“선생님께서 우리를 내쫓으셔,

당신은 그걸 모르고 있소?

아직 모르고 있느냐 말이야?

 

우리를 안티오키아로

보내신단 말이오!”

 

 

“그래서요? 선생님께서는

두 사람이 당신 이름으로

모여 있으면

 

당신이 그들 가운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자, 요한!

당신은 아마 지금까지

당신 자신이 당신 운명을 택했고,

 

그래서 당신으로선

다른 의지에 인종(忍從)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사랑에서 온다 하더라도

무서운 모양이로군요.

 

저는… 남이 제게 강요하는 운명을

참고 견디는데 습관이 돼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어떤 운명이었습니까!

…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새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아니! 제가 지금까지

난폭한 속박에 반항했던 것은

 

오직 제 영혼까지도

속박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지

다른 이유에서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젠 우리 영혼에

모욕을 주지 않고

 

우리에게 주님의 봉사자가 되는

자격과 실제성을 주는

 

사랑의 다정한 속박을

반항해서 되겠어요?

 

당신은 아프기 때문에

내일을 걱정하는 겁니까?

 

제가 당신을 위해 일하겠어요.

외로울까 봐 걱정하세요?

 

 

그러나 저는 당신을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예요. 틀림없어요.

 

저는 제 인생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어요.

 

당신은 하느님께서

제게 맡겨 주시는 이웃이세요.

 

당신이 얼마나 제게

소중하겠는지 생각해 보세요!”

 

“너희는 라자로의 집에

있을 터이니까

 

살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교육 방법을 쓰라고

너희에게 권고한다.

 

 

너는 선생으로서,

여자인 너는 여자들이 하는 일로.

 

그것이 사도직에 소용될 것이고,

너희들 하루의 목적을 주는데

소용될 것이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신디카가 꿋꿋하게 대답한다.

 

요한은 여전히 어린아이를 안고

조용히 울고 있다.

 

마륵지암이 요한을

어루만진다….

 

“너 나를 기억하겠니?”

 

“요한 아저씨, 늘 기억할 거야.

그리고 아저씨를 위해

기도하겠어요.

 

 

…그리고

… 잠깐만 기다려요 ….”

마륵지암은 뛰어 나간다.

 

신디카가 묻는다.

“저희는 안티오키아에 어떻게 갑니까?”

 

“바다로 해서. 무서우냐?”

 

“아닙니다, 주님.

게다가 주님이 저희를 보내시니,

이것이 저희를 보호할 것입니다.”

 

“너희는 두 시몬, 내 사촌들,

제베대오의 아들들, 안드레아

그리고 마태오와 같이 간다.

 

여기서부터 프톨레마이스까지는

(현지명: 이스라엘 항구도시 아크레)

마차로 갈 터인데,

 

마차에는 궤들과

신디카 너를 위해 내가 만든 베틀과

 

요한에게 유익한

물건들을 실을 것이다 ….”

 

 

“저는 궤들과 옷들을 보고

어떤 일을 상상하고,

 

제 마음에 초탈(超脫)에 대한

각오를 시켰습니다.

 

여기서 사는 것은 지나치게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

 

흐느낌을 참느라고

신디카의 목소리가 약해진다.

 

그러나 요한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하여 침착해진다.

 

그리고 단단해진 목소리로

“저희가 언제 떠납니까?” 하고 묻는다.

 

 

“사도들이 도착하는 대로,

어쩌면 내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허락하시면

옷을 궤 안에 정리하겠습니다.

요한, 당신 책들을 주세요.”

 

나는 신디카가 울기 위해

혼자 있기를 바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 요한이 대답한다.

“가져가요…그렇지만 파란 리본을 맨

그 두루마리를 내게 주오.”

 

마륵지암이 그의 꿀단지를

가지고 돌아온다.

 

“요한 아저씨, 자 받으세요.

저 대신 잡수세요 ….”

 

 

“아니다. 얘야! 왜 그러느냐?”

 

“희생하는 꿀 한 숟가락이

슬퍼하는 사람에게

 

평화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요.

 

아저씨는 슬퍼하지요.

저는 아저씨가 아주 많은 위로를

받으라고 꿀을 전부 드려요.”

 

“얘야, 그러나 그건

너무나 큰 희생이다.”

 

“아니에요! 예수님의 기도에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하는 말이 있지요.

 

이 단지가 제게는 유혹이었어요.

…그리고 악이 될 수도 있었어요,

 

제 서원을 깨뜨리게

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하면 이 단지를

다시는 못 보고…

그러면 더 쉽고…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 새 희생으로

아저씨를 도와주시리라고 꼭 믿어요.

 

그렇지만 이젠 울지 마세요.

신디카 아줌마도 울지 말고 …”

 

과연 그리스 여자 신디카는

요한의 책들을 모으는 동안

소리 없이 울고 있다.

 

그리고 마륵지암이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어루만지는데,

 

나도 몹시 울음이

터지려고 한다.

 

 

신디카가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나가고,

 

성모님도 꿀단지를 들고

따라 나가신다.

 

요한은 곁에 앉아 계신 예수와

그가 안고 있는 아이와

함께 남아 있다.

 

그는 침착하다.

그러나 괴로움에 시달려 있다.

 

“네가 마지막으로 쓴 것도

두루마리에 넣어라.” 하고

예수께서 권하신다.

 

“나는 네가 그것을

마륵지암에게 주기를

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마는 …”

 

“그렇습니다.

… 제 것으로는 또 하나

베껴놓은 것이 있습니다.

 

 

… 얘야, 여기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네가 없을 때 말씀하신 것들과

다른 말씀들도…

 

너는 앞이 창창하니까

너를 위해서 선생님의 말씀을

계속 베껴 두려고 했었는데 …

 

네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지 누가 알겠니…

그러나 이젠 베낄 수 없게 되었다.

 

… 이제는 내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게 되었다….”

 

요한은 다시

엉엉 울기 시작한다.

 

마륵지암의 새로운 태도는

부드럽고도 씩씩하다.

 

그는 요한의 목에

매달리면서 말한다.

 

 

“이제는 제가 선생님의 말씀을 써서

아저씨에게 보내겠어요.

 

… 그렇지요, 선생님?

그렇게 할 수 있지요?”

 

“물론 할 수 있고말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큰 자선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겠어요.

그리고 제가 없을 때는 열성 당원

시몬 아저씨더러 해달라고 하겠어요.

 

시몬 아저씨는 저를 많이

좋아하고 아저씨도 많이 사랑해요.

 

그리고 아저씨에게 인정을

베풀기 위해서 그렇게 할 거예요.

 

그러니까 이젠 울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아저씨를

보러 갈 거예요.

 

 

… 아저씨는 틀림없이

아주 멀리 가진 않지요….”

 

“아이고! 얼마나 먼데!

수백 마일이나 된단다.

 

…그리고 나는 멀지 않아

죽을 거다.”

 

아이는 실망하고 낙담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쉬운 것으로 생각하는

 

어린아이의 아름다운

침착성으로 다시 제정신을 차린다.

 

“아저씨가 거길 가니까

저도 아버지 하고 같이

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린 서로 편지를

주고받을 거예요.

 

 

성경을 읽으면 하느님과 같이

있는 것 같지요?

 

그러면 편지를 읽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그 편지를 쓴 사람과

같이 있는 것과 같을 거예요.

자, 저하고 이쪽으로 가요….”

 

“그래, 요한아, 가자.

곧 내 사촌들이

 

열성 당원과 같이 올 거다.

그들을 오라고 불렀다.”

 

“그분들이 이 일을 알고 있습니까?”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모두 오기를 기다려서 말하려 한다.

 

 

“좋습니다. 주님, 가십시다….”

 

요셉의 방에서 나오는 사람은

허리가 많이 구부러진 늙은이이다.

 

성모님과 신디카가 말없이

물건과 옷들을 궤 안에 차곡차곡

정돈하고 있는

 

작업장 쪽으로 가는 동안

풀 하나하나, 나무 하나하나,

 

그리고 수반과 동굴에

인사를 하는 것 같은 늙은이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 없고

눈물에 젖은 그들을

 

시몬과 유다와 야고보가 만난다.

사도들은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진실을

알아차리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 요한이 갇혔던

장소를 지금 통용되는 이름으로

알려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래서 옛날 이름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비티니아와 미시아’라고

이제 명확히 밝혀 말하겠다.

 

그러나 이 복음서는 단순한

사람들과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박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박사들에게는 대부분

이 복음서를 받아들일 수 없고

무익한 것이다.

 

단순한 사람들과

순박하고 온유한 사람들은

(원주: 보잘것없는 사람)

‘비티니아나 미시아’보다는

아나톨리아’를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엔도르의 요한의

고통을 생각하고 울고 있는

작은 요한아, 그렇지?

(마리아 발또르따의 애칭)

 

그러나 세상에는

엔도르의 요한이 너무도 많다!

 

작은 요한아, 이제는 쉬어라.

너는 결코 선생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지 진

않을 것이고,

 

오히려 반대로 점점 더

가까이 있을 것이다.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https://cafe.daum.net/xp8046/YVL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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