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 05:13ㆍ카르마의 영혼
<영원한 가르침>
사람의 능력,
사랑이 행동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냐?
사람의 지혜,
사랑이 가르치는 게 아니고
무엇이냐?
사람의 자비,
사랑이 용서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냐?
사람의 정의,
사랑이 다스리는 게 아니고
무엇이냐?
이처럼 나는 하느님의
수 없이 많은 속성에 대해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과 같은,
사랑을 갖지 못한 사람이
하느님을 품고 있다
생각할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이 하느님은 맞아들이면서
사랑은 맞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오직 하나뿐인,
창조주와 인간들에게 미치는 사랑,
창조주가 인간에게 주는 반쪽과
인간이 창조주께 드리는 반쪽 없인
절대 가질 수 없는 사랑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 안에 계시는데,
지워지지 않는 표를 가지고,
아버지와의 정배로써
왕의 자격을 가진다.
영혼은 하느님의 옥좌고,
육체는 하느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업신여긴 사람은,
형제의 집주인을 업신여기고
슬픔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
이 생명의 전부며,
모든 형제 안에 계신
저 위대하신 분이,
더 작은 존재며 전부의 일부분인,
개별의 사람 하나 하나에게
가해지는 모욕을,
당신 모욕으로
생각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때문에 나는 너희들에게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자비 행위를 가르쳤고,
이로써 너희 형제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쳤으며,
이로써 너희 형제를
판단하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고,
물리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다.
너희 형제들이
착하건 착하지 않건,
신자 건 이방인이건,
친구 건 원수 건,
부자 건 가난한 사람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잠자리서 잉태가 이루어질 때,
그것이 금으로 만든 침대서
이루어지건,
외양간 짐승 잠자리인
짚 위에서 이루어지건,
똑같은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왕후의
태중에 생겨나는 인간과,
거지 태중에 생겨나는 인간과
절대 다르지 않다.
새로운 인간 형성의 잉태는,
사람들 종교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세상 어느 부분에서나 다 똑같다.
모든 인간이,
하와의 태에서
아벨과 카인이 생겨난 것처럼
똑같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임신과,
형성과, 생겨나는 방식은 평등하고,
하늘에서의 형성과 생겨나는
방식과 평등도 일치한다.
즉, 태아가 사람의 태아가 되고
짐승의 태아가 되지 않도록,
태아에게 불어넣어주는
영혼의 창조가 그것이다.
그런데 영혼은,
창조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사람과 동반해서 살아남아,
전체 인류의 부활을 기다리게 되고
그때 부활하게 되는 육체와
다시 결합해서
육체와 더불어 상이나
벌을 받게 되어있다.
세상에 사는 동안 행한
행동에 따라 상이나 벌을
받는 것이다.
사랑이 정말
불공평할 수 있다고,
또는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이나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았단 이유로,
또는 그들 종교가 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종교를 따르며
덕행을 닦았음에도
영원히 상을 받지 못한 채로
있을 것이란 걱정은 하지 말아라.
세상이 끝난 다음에는
사랑만이,
즉 창조주와 의롭게 살게 될
모든 인간의 결합 말고,
다른 덕행은
살아남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위한 천국 하나,
그리스도인을 위한 천국 하나,
가톨릭 신자를 위한 천국 하나,
이방인을 위한 천국 하나,
이교도를 위한 천국 하나,
이처럼 천국은 많지 않을 것이다.
천국이 그만큼 많지 않고,
다만 하나만 있을 것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상도 오직 하나일 것이다.
즉 의롭게 살았을 피조물과
결합하게 될 창조주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성인의 영과
육체의 아름다움에,
피조물 안에서
아버지와 하느님으로서의
기쁨을 가지고
당신 자신을 감탄하며
보실 것이다.
이처럼 오직 한 분의 주님만이
계실 것이지,
이스라엘을 위한 주님 한 분,
가톨릭교를 위한 주님 한 분,
다른 각 종교를 위한 주님
한 분씩 계시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큰 진리를
너희들에게 알린다.
이것을 기억하고,
너희 후계자들에게 전하여라.
모호한 것은
여러 해나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
성령께서 항상 다시
진리를 밝혀 주실 거란 기대는
하지 말아라.
잘 들어라.
너희가 혹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 마칠 때,
저희 들이 이방인과
같이 취급된다면,
그렇다면 거룩한 종교에
속해 있었다는 게 옳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하고.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거룩한 종교에 속해 있으면서도
거룩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지극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처럼
되지 못하는 사람과 같은
정의가 있을 것이며,
그것이 참 정의다’라고,
덕행이 있는 이교도는
자기 종교가 좋은 종교라는
확신을 가지고,
진정한 덕행을 닦았다는 이유만으로
끝에 가서 천국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세상이 끝나서.
죽은 사람들의
네 군데 체류지 중 두 군데.
즉 천당과
지옥만이 남아 있게 될 때,
그때는, 정의가
자유의지란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골랐을 사람이나
나쁜 열매를 원했을 사람에게
영원한 두 나라를 보존시켜
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행 있는 이교도가
이 상에 이르기까지
얼마를 기다려야 하겠느냐!….
너희들은
그 생각을 하지 못하느냐?
그리고 이 기다림은,
특히 구속과 그 뒤에 일어난
모든 기적과 함께 이루어져
복음이 세상에 전해졌을 때,
다른 종교에서 의인으로 살았지만
참믿음의 존재와
그 실재(實在)에 대한
증거를 알면서도
그 믿음에 들어오지 못했을
영혼들은 정화(淨化)가 될 것이다.
그들을 위해 세상 끝마칠 때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임보가
(임시 보호)
있을 것이다.
참 하느님을 믿었지만,
영웅적으로 거룩하게 될 줄
알지 못한 사람에게는
오랜,
연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연옥이
세상 끝마칠 때야 끝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속죄와
기다림의 시간 후에는
착한 사람이면,
어디에서 왔건 모두 하느님의
오른편에 있을 것이고,
악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건
왼편으로 갔다가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갈 것이고,
구세주는 착한 사람들을 데리고
영원한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주님, 주님의 말씀을 제가
알아듣지 못했으면 용서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은 매우 어렵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요….
주님은, 주님이 구세주시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구속하실
것이라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전에 살았기 때문에
주님을 알지 못해서,
또는 주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묻는다.
“내가 네게 그 말을 해주었다.
즉 그들의 의로운 생활 때문에,
그들 선행과 그들이 참된 것이라
믿었던 그들 신앙 때문에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구세주께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세주는 그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라도
고통을 당할 것이다.
바르톨로메오야,
너는 하느님인 사람으로서의
내 공로가
어떤 정도의 가치를
가질지 상상하지 못하느냐?”
“주님, 그 공로 역시
하느님의 공로보다는 떨어집니다.
따라서 주님이 영원으로부터
가지는 공로보다는 떨어집니다.”
“네 대답은 옳기도 하고
옳지 않기도 하다.
하느님의 공로는 무한하다고
너는 말했지.
하느님께 있는 것은
모두가 무한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공로를 가지고 계시지 않다.
공로를 세우지 않으셨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특유의 속성과
덕들을 가지고 계신다.
하느님께서는 존재하는 분이시다.
즉 완전이시고 무한이시고
전능이시다.
그러나 공로를 세우기 위해선
우리 본성을 넘어서는 어떤 일을
힘들여 실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는 것은 공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약한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진짜 희생을 하면,
아껴 먹는 것은
공로가 될 수 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은 공로가 아니다.
그러나 모욕과 같은 것에,
대꾸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면
공로가 된다.
이제 너는 하느님께서 완전하시고
무한하기 때문에 당신 자신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겠지.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인
나의 무한한 천주성을,
인간적 한계까지 낮추어
자기 자신을 강제할 수 있고,
자기 안에 없거나
은유적(隱喩的)인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모든 감각과 감정,
고통과 죽음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실체적인 인성을
이김으로써 자신을 강제할 수 있다.
죽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죽음이 고통스럽고, 너무 이르고,
억울할 때는 더욱 그렇다.
아무도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다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이
끝남을 보는 것과 같이
죽음도 침착하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중략)
사람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도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사랑할 줄 알면,
가장 부유하게 될 수 있고,
수없이 많은 형제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나,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빵 한 조각, 물 한잔,
누더기 옷 한 벌 없게 되더라도
여전히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어떻게?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고통당함으로써.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하는가?
모두에게.
어떻게?
너희들 모두가 거룩한
수없이 많은 모습으로,
너희가 사랑할 줄 알면,
하느님처럼 행동하고, 가르치고,
용서하고, 다스릴 수 있을 것이고,
하느님인 사람처럼
구속(죄의 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주님, 그런 사랑을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고
요한이 탄식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너희에게 주는 것은
사랑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것을 받아들여서
점점 더 완전하게 실천해야 한다.
어떤 사건에서도 너희는 사랑과
갈라져 있어선 안 된다.
육체적인 사건에서나
정신적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 해야 한다.
너희 행동과 너희 그날그날 일을
거룩하게 하고,
너희 묵상기도에 자극을 주고,
너희 행위를 밝게 하여라.
거룩하게 행동하고, 맛있게 기도하고,
빛으로 기도하면 그것이 곧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의식은 가치가 없고,
기도는 헛것이고,
제물은 거짓된 것이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가난한 사람이
너희에게 형제로 인사하는 미소는,
어떤 사람이,
사람 눈에 띄려는 목적으로
너희 발 앞에 던져주는
돈주머니보다 더 가치가 있다.
사랑할 줄 알아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항상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주님, 저희들에게
그렇게 사랑하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너희에게 그것을 가르쳐 준 것이
2년이나 된다.
내가 하는 것을 보는 대로 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사랑 안에
있을 것이고,
사랑이 너희들 안에
있을 것이다.
너희들에게
성유(聖油)와 관(冠)의 표시가 있어,
너희를,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제로
알아보게 할 것이다.
이제는 이 그늘진 곳에서 쉬자.
키가 크고 우거진 풀이 있고,
나무들이 더위를 덜어준다.
저녁때쯤 다시 길을 가자…”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https://cafe.daum.net/xp8046/YVLR/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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