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6. 06:41ㆍ카르마의 영혼
<수 애제자의 죽음>
주님, 제가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
저는 강의 연한 부두와
섬 안에 있는 지방 총독의 관저와
화려한 거리와
수백 개의 강력한 탑이 있는
성곽을 가진 안티오키아를 봅니다.
(구글지도)
그리고 몸을 뒤로 돌리면,
이렇게 여자인 저 혼자
지배받는 로마 권력의 두 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휘몰아치는 자연의 힘과
반란을 일으킨 한 민족 전체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
사람에게 불안을
품게 하지 않는 약함과,
권력자들이 업신여기는
표면상의 약함인,
하느님이신 선생님을
모시고 있음의 힘,
이런 약함의 힘의 권력이 이곳
사람들에게 이룩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표현들이
무섭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즉 로마가 선생님을 알게 되면,
이 로마의 힘은
그리스도교의 힘이 될 것이고,
로마의 아성(牙城)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그리스도교적 로마는
전 세계적 그리스도교란
뜻이 될 것이므로,
이교도적인 로마의 아성으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요.
언제 그렇게 되겠는지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되리란 것을 느낍니다.
(중략)
예수께서 첫째 장을 도로 접으신다.
편지 내용을 들은 사람들은
신디카의 문체의 힘과 사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고
신디카가 왜 안티고니아를
떠났을까 하고 서로 묻는다.
그동안 예수께서는
둘째 장을 펴신다.
그때까지 의자에 앉았던 베드로가
더 잘 들으려는 것처럼
가까이 가서
예수께 꼭 붙어서서 보려고
뒤꿈치를 들고 선다.
“시몬아, 더운데 몹시
바짝 다가서는구나” 하고 예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네 자리로 돌아가거라.
이제까지 듣지 않았느냐?”
“들었냐구요? 예, 들었습니다.
하지만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부터
선생님의 얼굴이 변하고 우셨으니까
이제는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신 건
요한 때문만이 아니십니다….
요한이 죽어 가고 있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요….”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신다.
그러나 베드로가 뒤에서
편지를 엿보는 것을 막기 위해
촛대에서 멀어지시는 것은
상관하지 않으시고
제일 가까이 있는 기둥에 기대신다.
불빛이 종이를 비추진 않지만,
반대로 예수의 얼굴을 환히 비춘다.
베드로는 잘 보고 잘 듣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등받이 없는 걸상 하나를
예수 앞으로 끌고 가 앉아서
선생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저는 이것을
단단히 확신했기 때문에,
혼자 남게 되자,
이스라엘이 지배하고
있는 곳보다는,
로마처럼 모든 인종이
합쳐지고 섞이는 이곳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안티고니아를 떠나
안티오키아로 왔습니다.
(중략)
선생님, 요한이 로마인의
역법(曆法)에 따라
6월 9일 전의 제6일,
히브리인들로 볼 때는 대략,
타무즈 달이 시작되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알고 계신 것을
말씀드려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형제들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요한은 의인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고통에 대한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순교자로 죽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온 연민을 가지고 그를 보좌했고,
우리가 영웅에 대해 가지는
온 존경을 다해,
형제에 대해 가지는
온 사랑을 다해 그를 보좌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어도
제가 권태나 피로 때문이 아니라
영원하신 분께
그를 평화에게로 불러가 십사며
동정으로 청할 정도의
심한 고통은 막진 못했습니다.
요한은 <자유에로>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도대체 그가 말했던 것처럼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도 빛나는 지혜에까지
올라갈 수가 있습니까?
오! 죽음은 참으로 우리의 근본을
드러내는 신비고,
삶은 이 신비를 가리는 장치입니다.
밑그림 없이 우리에게 주어져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릴 수 있는 장치입니다.
요한은 많은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쓴 글들은
숭고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인간 폭력의
그림이 있던 이 세상
이 어두운 하늘에서,
요한은 슬기로운 예술가처럼
점점 더 빛나는 필치로 건너가
그의 그리스도인 적 생활 흐름을
덕행으로 꾸며,
마침내 하느님 안에 빠져 들어가
눈부신 영혼의 밝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 그의 마지막은
말하지 않고 시로 노래했다고,
그리고 저는,
언제나 사람이 말하는 것이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벌써
하느님 아들의 영이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주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노예 신분과 이교라는
두 가지 사슬에 묶여 있어,
영혼을 위한 양식을 찾으려고
철학자들의 저서를 모두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인간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것은
이미 인간의 말이 아니라,
초인의 말, 완벽한 정신의,
아니 그보다도 반신(半神)인
영의 말이었습니다.
저는 신비를 지켰습니다.
하기는 그것을,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하던 사람들,
요한에 대해 친절하기는 하지만,
가장 광범하고 가장 완전한
의미로서의 이스라엘 사람들인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과의 마지막 접촉에서
요한이 온전히 사랑의 표현이
되었을 때,
저는 모든 사람을 물리치고,
저 혼자서, 주님이 틀림없이
아시는 것을 거두었습니다….
주님…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마지막 날이 가까웠을 때,
가는 목소리로,
그리고 황홀로 불타는 눈길로
제 손을 꼭 쥐고,
그의 말로 제게 천국을 드러내
보이면서 말한 것과 같이
<그는 마침내 감옥에서 나갔습니다.>
그 사람은,
살고, 용서하고, 믿고, 사랑하는 것을
제게 가르치면서 죽었습니다.
제게 제 생애의 마지막 순간도
준비시키면서 죽었습니다.
주님, 저는 다 압니다.
겨울 저녁때, 요한은 예언자들에
대해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진짜 이스라엘
여자처럼 압니다.
그리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 않는 것도 압니다….
선생님이시며 주님…
저는 요한을 본받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총애를
받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청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더 영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는 종이를 다시 접으시고
셋째 장을 꺼내려고 하신다.
“아닙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하고 베드로가 외친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 장이 그렇게 빨리 끝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전부 읽지 않으십니다!
주님, 왜 그러십니까?
자네들, 항의하게.
신디카는 선생님을 위해보다는
우리를 위해서 더 많이 썼는데,
선생님은 읽지 않으신단 말이야.”
“베드로야, 고집하지 말아라.”
“아닙니다. 고집하겠습니다!
예, 고집하고 말고요!
아시겠습니까?
저는 선생님의 눈이 갑자기
더 아래쪽으로 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마지막 몇 줄은
읽지 않는 것을 명백히 보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그 장의 마지막
부분을 읽지 않는 한
마음이 편치 못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전에 우셨습니다.
그런데 뭡니까?
선생님이 읽으신 것 가운데
혹시 울 만한 것이 있었습니까?
그가 죽은 것을 아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 때문에
울게 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의 영을 잃는
나쁜 죽음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입니다….
자, 읽으십시오!
어머님! 요한!
무엇이든지 얻어내시는 두 분….”
“이봐라, 아들아.
그것을 알아서 괴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그 잔을 마시겠다….”
“모두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
‘저는 성경을
진짜 이스라엘 여자처럼 압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 않는 것도 압니다.
요한이 죽었고,
또 선생님은 그에게 임보에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으니까,
이제는 선생님의 수난이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요한이 이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주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증오가 어떻게 올지,
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가 알기 전에 데려가시겠다고
약속했단 말도 제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요한이 주님을 괴롭힐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을 막으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제 요한은 갔습니다….
그러니까 주님도 돌아가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아니, 사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을 통하여,
저희 안에 계신
주님 자신을 통한 희생이 저희에게,
영혼의 생명과 은총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의 일치를
돌려준 다음,
저희 안에 계신 천주성을 통해
정말로 사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선생님, 제 구세주, 제 임금님,
제 하느님…
요한이 육체로는 무덤에서
잠들어 있고,
영으로는 기다리면서
쉬고 있는 지금
선생님께로 가고 싶은
유혹이 강합니다.
아니, 강했었습니다.
제자들인 제 자매들과 함께
선생님의 제단 곁에 있기 위해
선생님 곁으로 가고자 하는
유혹 말입니다.
그러나 제단은
희생으로 꾸며져야 할 뿐 아니라,
하느님께 경의를 표하고 제물을
바치는 이에게 경의를 표하는
꽃장식으로도 꾸며져야 합니다.
저는 멀리 있는 제자로서의
제 자주 빛 꽃장식을
선생님의 제단 아래 갖다 놓습니다.
저는 거기에 순종과 근면과
선생님을 뵙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희생을 갖다 놓습니다….
아!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입니다.
요한과의 초자연적인
주님과의 대화가 끝나서
제가 더 이상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된 지금
그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주님, 주님의 종이
오직 주님의 뜻만 행할 줄 알고
주님을 섬길 줄만 알도록
종이 위에 손을 들어주십시오.”
예수께서는 종이를 접으시고,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신다.
그 얼굴들은 창백하다.
그러나 베드로는 중얼거린다.
“저는 선생님이 왜 우셨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나는 아내를 죽인 사람,
옛날 죄수, 그리고 이교도의 노예를
너무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비교해 보았기에 울었다.”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방인들보다 못한 히브리인들,
죄수보다 못한
사제들과 지도자들을 보시고
슬퍼하신 거로군요.
선생님의 생각이 옳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저 여자는 정말 기막힌 여자입니다!
그 여자가 멀리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아깝습니다!….
예수께서 셋째 장을 펴신다.
“‘그리고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주님의 고통을 덜어 드리기 위해
모든 정결 의식을 다한 다음에 가서
이미 평화를 누리고 있는
주님의 제자와 형제를
모든 일에 본받으십시오.’”
“아! 아닙니다. 그다음에요!”
베드로는 예수께서
비킬 수 있기 전에
재빨리 의자에서 뛰어
일어나서, 그의 눈이 보는 곳을
예수께서 보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드시고,
슬프기보다는 부드러운 얼굴로,
부드럽기는 하지만 단호한 얼굴로
당신의 사도를 물리치시며
말씀하신다.
“베드로야, 네 선생은
무엇이 네게 유익한지 알고 있다!
네게 유익한 것만을 주게
가만있어라….”
베드로는 이 말씀과,
그보다는 몹시 애원하는 듯한
예수의 눈길에 더 감격하였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반짝이며
떨어지려 한다.
그는 자기 의자로
내려오며 말한다.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과연 무슨 말이
있었을까요?!”
예수께서는
다시 읽기 시작하신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으니,
이제는 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의 장례를 치른 다음 저는
안티고니아를 떠났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대우를
잘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이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었습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이,
많은 사람이 저희를 찾아왔기 때문에
저는 많은 가정을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사회에서 일할
생각이기 때문에
제 땅이 있는 가족 곁에
자리 잡는 쪽을 택했습니다.
어떤 로마 귀부인이
헤로데의 주랑(柱廊) 곁에 있는
그의 호화로운 집에
저를 맞아들이려고 했습니다.
매우 부유한 시리아 여자가
띠로 사람인 남편이,
셀레우치아에 세운 직물 공장장
자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셀레우치아의 다리 근처에 사는
개종자로 아이 일곱을 둔 과부가
사내아이들의 선생님이었던
요한을 생각해서 저를
두려고 했습니다.
원형경기장 곁에 있는 거리에
상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그리스인 가족이
그의 집으로 오라고
청했었습니다.
그것은 경기가 있는 시기에 제가
그들에게 유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끝으로, 분명히 군인이고
제 생각으론 벌써 백부장인 로마인이,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지휘관)
정확히 무슨 임무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남아 있는데,
그 사람도 향유로 병을 고쳤습니다.
(성모님이 최초로 만들어준 연고)
그래서 그 사람도 자기 집에 와
있으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자도
상인도 원치 않았습니다.
저는 영혼들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의 가르침이
그리스 사람들과 로마 사람들의
영혼을 통해서
세상에 퍼지기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피우스 산비탈,
병영 근처에 있는 제논의
집에 와 있습니다.
성채가 산꼭대기에서 위협적으로
굽어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별로 매력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어도,
성채는 온폴루수와 님페우스의
호화로운 저택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알렉산데르라고 하는
주님을 아는 병사입니다.
커다란 병사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가이사리아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고,
그의 짧은 망토 밑에
곧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군단 사령관 자신도 있습니다.
투박한 소박함을 가진 알렉산데르는
진리에 더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러나 군단 사령관도
주님을 완전한 수사학자(修辭學者))로,
또 그가 말하는 것처럼 <신 같은>
철학자로 주님을 우러러보고,
아직 진리를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해도 지혜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좀 알게 해서
그들과 그들 가족의
마음을 끈다는 것은
동서남북에 씨를
뿌린다는 뜻이 됩니다.
군대는 키로 까불리는 낟알 같고,
아니 그보다도 회오리바람에 불려,
우리의 경우에는 카이자(황제)의
의도와 제국의 필요에 따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껍질과 같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주님의 사도들이
날아가는 새들처럼
세상에 흩어지게 될 것인데,
그들이 사도직을 행하는 곳에서
주님이 계셨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한 사람,
다만 한 사람,
오직 한 사람만이라도 만나면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으로
나이 많은 검투사(劍鬪士)들의
고통을 느끼는 팔다리와
젊은 검투사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기도 합니다.
또 이제는 로마의 귀부인들을
피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고,
제게 모든 것을… 당하게 한
사람들을 참아 견디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서입니다.
제 생각이 틀렸으면, 주님 지혜의
충고를 제게 주십시오.
다만 제 잘못된 생각은
제 무능에서 오는 것이지 악의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십시오.
그러나 주님은
이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 주님의 종이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주님, 그러나 주님은
제정신을 보시지요….
언제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언제 어머님과 형제들을
보게 될까요?…
인생은 지나가는 꿈입니다.
헤어짐은 지나갈 것입니다.
저는 주님 안에 그분들과 같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것이 제게, 요한에게서처럼
제게도 기쁨과 자유가 될 것입니다.
제 구원자이신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리오니,
제게 강복하시고 평화를 주십시오.
나자렛의 어머님과
제 동료 제자들에게 평화와
축복을 드립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평화와 축복을.
주님께는 영광과 사랑을.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https://cafe.daum.net/xp8046/YVLR/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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