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3. 10:14ㆍ카르마의 영혼
<신을 경험한 사람들(2)>
3. 제임스 어윈
(아폴로 15호 탑승자)
달의 색깔은 납빛이었다.
그것이 진짜 달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산과 분화구와 계곡이
놀라울 정도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보여주고 있었다.
달은 지구보다 훨씬 작지만
하나하나의 지형은 거대하다.
분화구 가운데 어떤 것은
일본열도보다 더 크고,
후지산보다 더 큰 산도
얼마든지 있다.
그랜드 캐니언 보다
더 큰 계곡도 있다.
거기선 생명의 단편조차
관찰할 수 없다.
생명의 색인
파란색도 없고 녹색도 없다.
움직이는 것은 전혀 없다.
대기가 없기 때문에
바람조차 없다.
완전히 소리가 끊긴
고요의 세계다.
생명이란 관점에서
완전히 ‘무’다.
사람을 떨리게 할 정도로 황량하고
삭막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장엄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그 광경에
빠져들었다.
신이 있다고
느꼈다.
달 위에 신이 있었단 말은 아니다.
지금 바로 여기에 신이 있다고
느꼈단 것이다.
나의 바로 옆에서
신의 존재를 느꼈다.
손을 뻗기만 하면 신의 얼굴을
바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나는 가까이서
신의 존재를 느꼈다.
그런 현존 감은
지적 인식을 매개로 한 게 아니다.
내가 여기 있고
당신이 거기에 있다.
이때 서로서로는 거기에 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이것처럼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에
말을 걸면 바로 대답해 온다.
당신과 내가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것처럼
신과 대화할 수 있었다.
신은 내가 구하는 모든 것에
대답해 주었다.
달 위에서의 활동이
전부 프로그램화돼 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여러 상황이 생겨
당황스러운 때가 많았다.
그때는 스스로 빨리 판단을
내려야 했고,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신에게 물어봤다.
그러면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이 과정은 어떤 사람에게 물어서
대답을 듣는 과정과는 다르다.
모든 과정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헤매고, 묻고, 대답한다고
표현한 것은,
그저 설명을 위한 것이고
실제론 한순간의 과정이다.
달에선 신에게 뭔가를
질문했을 땐 곧바로 대답이 왔다.
신의 목소리가 음성으로
들려왔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신이 지금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능력자들끼리 나누는 텔레파시
대화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곁에 신이 살아있고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혹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는 실제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러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이 바로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내가 어디에 있건
신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신은 항상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
존재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존재감을 너무나 가까이서
느꼈기 때문에,
나는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곧
신은 초자연적으로 널리 퍼져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저 멀리 지구가
우두커니 존재하고 있다.
다른 곳엔 어디에도 생명이 없다.
나 자신의 생명과 지구의 생명이
가느다란 한 가닥 실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언제
끊어져 버릴지 모른다.
이 거대한 우주에선
둘 다 약하고 약한 존재였다.
이처럼 무력하고 약한 것이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란 사실을
아무런 설명 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
신의 은총 없이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있을 수 없단
사실을 의문의 여지없이
깨닫게 되었다.
우주비행 전까지 나는
보통 사람 정도의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보통 사람 정도의
회의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 모든 회의는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신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4. 에드거 미첼
(아폴로 14호 탑승자)
나는 열렬한 기독교인으로
남부 침례교회 근본주의자였다.
알다시피 근본주의 교리는
성서에 있는 것은 전부
옳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과학자였다.
40년 동안 내 인생은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의 대립을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을까 라는
고뇌의 연속이었다.
철학과 신학을 참 많이도
공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이 두 개의 상반된 진리를
마음에 품은 채 우주로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우주에서
그야말로 한순간에
그 오랜 문제의 해답을 얻었다.
바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았을 때였다.
그때 내 머릿속을 늘 맴돌았던
의문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여기 존재하고 있는가?
우주는 물질의 결합에
불과한 것인가?
우주와 인간은 창조된 것인가?
아니면 우연의 산물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해
흘러가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커다란 계획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건가?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종교학에서 말하는 신비체험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세계는 의미가 있고,
나도, 우주도, 우연의 산물일
수는 없었다.
모든 존재가 제각기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고,
여기엔 신적인 어떤 계획이
있는 것이었다.
개별적 생명은 전체의 일부고
개별적 생명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
이 전체성 안에서
나는 신과 한 몸이다.
나는 신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주는 창조적
진화 과정에 있다.
인간의 진화 과정
방향은 뚜렷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 의식이 영적으로
보다 더욱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다.
5. 제널드 카
(스카이랩 4호 선장)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들과
우주 창조 이후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이 우주에는 무수한 생명이
각자의 발전 단계에 속한 채
존재하고 있다 보는 게 타당하다.
지구상의 생명만이 최고의 발전
단계에 있다느니 하는 생각들은
인간들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 자연 속에서 인간의 보잘것
없음을 보고 있자면.
인간이란 것이 우주에서
그렇게 대단한 생명체가
아니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음엔, 지구에서 눈을 돌려
우주 전체의 광활함에 주목해 보자.
그때는 우주 속에 있는 지구 역시
인간의 생각만큼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우주에서의 체험은
나의 신앙을 확장시켰다.
이전의 나의 신앙은 편협했지만,
우주에서의 체험 이후는
전통적 교리에 별로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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