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0. 15:18ㆍ카르마의 영혼
<영혼의 자서전 (3)>
근원계 영혼들은 서로를,
기쁨의 큰 영혼이 개체화된
점들로 인식한다.
그들 생각에서 나온 물질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그들은 몸과 생각의 차이란
단지 상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이 눈을 감으면
눈부신 하얀빛이나
희미한 푸른빛 아지랑이를
볼 수 있듯,
근원계 존재는
생각만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근원계 존재는
우주정신의 힘으로
어떤 대상을 창조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근원계 에서의 죽음과
재탄생도 생각 속에 있다.
근원체를 지닌 존재들은 오로지
영원히 새로운 알음알이라는
진미만을 즐긴다.
그들은 평화의 샘에서
길어 올린 물을 마시고,
그 무엇도 지나간 흔적 없는
지각의 땅을 밟고 다니며,
끝없는 열락(悅樂)의
대양에서 헤엄친다.
보라, 생각에서 비롯된
근원계 존재들의 찬란한 몸들이,
대 영혼이 창조한 수많은 행성과
새로이 보글거리는 우주들,
지혜의 별들, 꿈의 황금빛
성운들을 지나며
저 푸르른 무한자의 품으로
날아가는 광경을!
많은 존재는 근원계 우주에
수천 년 동안 남게 된다.
좀 더 깊은 황홀감으로
해방을 얻어 자유로워진 영혼은,
이제 스스로를 자그마한 근원체에서
끌어낸 다음 광대한 우주를 입는다.
힘과 사랑, 의지, 기쁨, 평화, 직관,
침착성, 자기통제, 집중 등
각각을 분리하는 상념 혹은
특정화된 파도의 소용돌이가
영원히 환희에 찬 지복(至福)의
바다로 함께 녹아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영혼은 환희를,
개별화된 의식의 파도로
체험할 필요 없이,
그 모든 파도를 포용하는
하나의 큰 바다에 합류시킨다.
영원한 웃음, 전율과 감동이
고동치는 우주의 대양으로!
어떤 영혼이 세 개의 몸으로 된
'고치'를 벗어 던질 수 있으면,
그 영혼은 영원히
상대성 법칙에서 벗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
별들과 달들과 해들이 아로새겨진
날개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편재의 나비를 보라!
대 영혼으로 확장된 영혼은
빛 아닌 빛, 어둠 아닌 어둠,
생각 아닌 생각의 영역에
홀로 머물면서,
우주 창조의 꿈을 꾸며
법열의 기쁨에 도취 되어 있다."
"자유로운 영혼!"
나는 경외의 마음으로 외쳤다.
스승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어떤 영혼이 마침내
세 가지 몸(육체, 영체, 근원체)이라는
미혹의 항아리들을 제거하면,
그 영혼은 개별성을 잃지 않고도
무한자와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는 예수로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최후의 자유를 얻은 상태였다.
지상에서 죽음과 부활을 겪는
사흘로 상징되는 과거의 세 단계서
예수는 완전히
대 영혼으로 승천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 것이었다.
영적 발달이 완전하지 못한 인간은
자신의 세 가지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물질계와 영계와
근원계의 윤회를 거쳐야만 한다.
최후의 자유를 얻은 도인은
다른 인간들을 신에게 데려오는
예언자로서
지상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고,
나처럼 영계와 우주에
남겠다고 선택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도인은 거주자들
업의 일정 부분을 떠맡음으로써
그들이 영계서
윤회의 순환을 마치고
영원한 근원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가 하면 근원계로 들어가서
그곳 존재들이
근원체를 입고 있는
기간을 단축시켜
'절대적 자유'를 획득하도록
도와주는 도인도 있다.”
"부활한 분이시여,
영혼이 다시 세 가지 세계로
돌아와야만 하는 업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전능하신 스승님의 말씀을
영원히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승이 지상에 계실 때는
한 번에 이처럼 많은 지혜를
소화한 적이 없었다.
이제 난생처음으로 삶과 죽음의
바둑판 위에 그어진 불가사의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선명하고 정확한 통찰력을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구루는 황홀한 목소리로
설명하셨다.
"인간이 영계에 계속 머무르려면,
그 전에 물리적 카르마 혹은
욕망이 완전하게 소진되어야 한다.
영계에는 두 종류의
존재가 살고 있다.
첫째, 아직 해결해야 할
지상의 카르마가 있어서
그 빚을 갚기 위해
거친 물리적 신체를 계속해서
다시 입어야만 하는 존재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죽고 나서
영계에 잠시 들르는
일시적 방문자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방문자는 고정적으로 영계에 사는
거주자들과 다르다)
지상의 카르마를 다 갚지 못한
존재들은, 영계의 죽음 이후에
우주의 상념들로 구성된
더 높은 근원계로 가지 못하고,
열여섯 가지 거친 요소들로
이루어진 물리적 신체와
열아홉 가지 미묘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영적 신체를,
연속적으로 의식하며
물질계와 영계만을 오가게 된다.
지상에서 영적 발달을
이루지 못한 존재는
대부분 시간을
죽음이라는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아름다운 영계 모습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 존재는 영계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물질계 차원으로 돌아가
좀 더 깊은 교훈을 얻게 된다.
이처럼 반복된 여적을 통해
미묘한 영적 구조를 가진 세계에
점차 익숙해진다.
둘째, 영계에 오래 머무르는
보통 거주자들은
모든 물질적 욕구로부터
영원히 해방되어
더 이상 거칠게 진동하는
지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다.
오로지 영적 카르마와 근원적
카르마만을 소진 시키면 되는
이런 존재들은
영적 죽음을 맞이하면 무한히
섬세하고 미묘한 근원계로 들어간다.
우주 법칙에 따라 결정된
일정 기간이 끝난 후
생각 형체인 근원체를 벗는
이들 진보된 존재들은
히라냘로카나 혹은 그와 비슷한
단계의 다른 영계로 돌아와서
아직 다 갚지 못한
영적 카르마 해결을 위해
새로운 영체로 태어난다."
스승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나의 아들아, 너는 이제 내가
신성한 명령에 의해 부활했음을
더욱 완벽하게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나는 지상에서 올라오는
영적 존재들보다,
특별히 근원계서
다시 영적으로 윤회해,
영계로 돌아오는 존재들을 위한
구원자 역할 수행을 하려고
부활한 것이다.
지상에서 오는 자들이 여전히
물질적 카르마의 흔적을
지니고 있으면
히라냘로카와 같은 높은 영계의
행성으로는 오르지 못한다.
지상에 사는 대부분 사람은,
명상으로 나타나는 환시를 통한
차원 높은 희열을 알지 못하고
영계 생활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않은 탓에,
죽은 다음에도 다시,
한정되고 불완전한
지상의 갖가지 즐거움 속으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한다.
마찬가지로 영계의 많은 존재도
자신의 영체가 분해되는 동안
근원계의 보다 진보된
영적 희열 상태를 마음속에
그려보는 대신,
거칠고 저급한 영적 행복만을
생각하는 차원에 머물면서
영계의 천국을 다시
방문하고자 갈망한다.
그런 존재들은 영적으로
죽은 다음에도
창조주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근원계에 완전히 머물려면
무거운 카르마를 청산해야 한다.
보기에만 즐거운
영적 우주계의 경험만을
더 이상 갈망하지 않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때만
비로소 근원계에 머무르게 된다.
모든 근원적 카르마 혹은
과거 욕망의 씨앗들을 청산하면,
갇혀있는 영혼의
무명이라는 세 개의 코르크 마개
중에서 마지막 것을 밀쳐내고
근원체라는 최종적 용기에서
빠져나와 영원한 존재와
하나가 된다.
이제 이해를
하겠느냐?"
그때 스승은 참으로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셨다.
"예! 스승님 은혜를 통해서
이해했습니다.
제가 느낀 이 희열과
감사의 마음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노래나
이야기에서도
이처럼 고무적인 지식을
얻은 적이 없었다.
힌두교 경전에서도
근원계와 영계,
그리고 인간의 세 가지
신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부활하신 스승의 말씀에 담긴
온화한 진실성과 비교하면
경전의 글귀란 한낱 궁벽하고
무의미한 표현에 불과했다.
그분에게는 참으로
'한 번 길을 떠나 그 경계를
넘으면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는
미지의 나라'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구루의 말씀이 계속
이어졌다.
"세 가지 신체가
서로 통한다는 것은
인간의 삼중 적 본성을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난다.
인간은 지상에서 깨어 있을 때
자신의 세 가지 그릇을
어느 정도 의식한다.
감각적으로 맛보고,
냄새 맡고, 물체를 만지고,
소리를 듣고,
대상을 보는 일에 열중할 땐
주로 물리적 신체를 통해 움직인다.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그려보거나
의지력을 행사할 땐
주로 영적 신체를 통해 움직인다.
어떤 대상을 생각하거나
깊은 명상에 잠겨 있을 땐
근원적 매개체가 발현된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근원적 신체와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는
우주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전체성이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개인을
'물질적 인간', '에너지적 인간’
혹은 '지성적 인간'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인간은 매일 열여섯 시간가량을
스스로를 물질적 용기와
동일하게 생각하며 지낸다.
그러다가 잠들어 꿈을 꾸면,
영계의 존재들이 그렇듯
힘들이지 않고도
어떤 대상이든 창조할 수 있는
영적 신체로 머물게 된다.
그러나 잠이 아주 깊이 들어
꿈도 꾸지 않는다면,
그때는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의식 또는 '나'라는 감각을
근원적 신체로 전환 시킬 수 있다.
이때의 잠은 생생하게
원기를 돋운다.
하지만 꿈을 꾸는 사람은
근원체가 아닌 영체와
접촉하게 되므로,
그런 잠은 충분한 원기 회복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
스승의 이와 같은 놀라운 진실을
설명하는 동안 나는 정말로
심혈을 기울여 들었다.
"천사 같으신 스승님,
스승님 몸은 제가 푸리 암자서
엎드려 울었던 그때,
돌아가셨을 때의 그 몸과
완전히 같습니다.”
"그렇다. 나의 새로운 신체는
옛것과 완전히 같다.
나는 지상에서 그랬던 것보다
훨씬 자주, 언제든 마음대로
이 형체를 만들거나 없애거나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재빨리 몸을 비물질화해서
빛의 특급열차를 타고
한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더 나아가 영계에서 근원계로
혹은 영계에서 물질계로
즉시 여행할 수 있다.
너는 요즘 매우 바삐 돌아다녔지만,
내가 봄베이에서 너를 찾아내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지 않았냐!"
나의 성스러운 구루가
미소를 지으셨다.
"오, 구루지, 저는 스승님의 죽음으로
너무나 깊이 상심하고 있었습니다!"
"아, 어째서 내가 죽었다는 것이냐?
내 모습을 봐라,
참으로 모순이 아니냐?"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두 눈이
사랑과 즐거움으로 반짝였다.
"너는 지상에서 단지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네가 지상에서 본 내 몸도
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네가 땅속에 매장한 것도
당연히 그 꿈의 영상이다.
이젠 더 섬세한 나의 육신이
더 섬세한 꿈으로 이루어진
창조주의 또 다른 행성에서
이렇게 부활했다.
지금 네가 그 모습을 보고 있고,
또 그 형체를 이렇게 꼭 껴안고
있지 않으냐!
더 섬세한 꿈의 육신과
꿈의 행성은 언젠가 사라져버린다.
그것들 역시 영원하지 않다.
꿈으로 만들어진 모든 거품은
결국 꿈을 깨는 순간 툭 치면
터지고 만다.
나의 아들 요가난다여,
꿈과 본질을 구분해야 한다!"
베단타 철학에도 나타나는 이러한
부활관은 나에게 경이로운
충격을 주었다.
푸리에서 생명이 빠져나간
스승의 육신을 보고 연민을 느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스승은 항상 신 안에서 완전하게
깨어 있었고,
지상에서 경험한 삶과 죽음,
그리고 지금의 부활까지도
모두가 우주의 꿈속에서
신성한 상념들이 연출하는
상대성 연극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자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요가난다여,
나는 이제 나의 삶과 죽음,
부활에 대한 모든 진실을
너에게 다 알려줬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라.
오히려 신의 꿈이 만든
지상 세계부터
신의 꿈이 만든
또 다른 영계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모든 곳에 나의
부활 소식을 널리 알리도록 하라.
그리하면 성내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불행의 꿈을 꾸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 가슴속에
새로운 희망이 스며들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스승님."
스승의 부활을 목격한 기쁨을
왜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두 형태가
신의 환상(마야) 속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한,
나는 너와 함께
미소 지을 것이다.
마침내 우리가 사랑하는
우주의 신과 합일되면
우리의 미소는
그분의 미소가 될 것이며,
합치된 기쁨의 노래는
영원히 진동하며
신과 조화를 이룬 영혼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이제 나는 너를 떠난다!"
이 말에 나는 껴안고 있는
내 팔 안에서
스승의 육신이
녹아버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목소리가 울리며
내 영혼의 하늘에 진동해 왔다
"내 아들아,
네가 니르비칼파 사마디의 문을
(의식의 최고 단계)
들어서서 나를 부를 때마다,
나는 오늘처럼 살과 피로 이루어진
몸으로 너에게 올 것이다."
이 거룩한 약속을 남기고
스리 유크테스와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구름 같은 목소리가
천둥의 음악이 되어 되풀이되었다.
"모두에게 말하라!
니르비칼파의 깨달음에 의해,
지상이 한갓 신의 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히라냘로카라는
더 정교한 꿈의 세계로 올 수 있으며,
그곳에서 지상의 육체와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한 나를
발견할 것이란 사실을.
요가난다여,
모든 사람에게 말하라!"
이별의 슬픔은 사라졌다.
오랫동안 평온을 빼앗았던
스승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연민도
이제는 부끄러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지복의 기쁨이
새로 열린 무한한 영혼의
숨구멍들을 통해 샘처럼 솟아났다.
과거엔 쓰지 않았던
막혔던 구멍들이
이제는 밀려오는 법열의 물결로
깨끗하게 넓혀졌다.
내 전생들이 활동사진
장면처럼 내면의 시야에 나타났다.
과거의 선한 업과 악한 업이
스승의 방문으로 인해,
내 주위를 비추며
우주의 빛으로 스러졌다.
내 자서전의 이 장에
(43.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부활)
나는 구루의 명령에 따라
그 기쁜 소식을 전한다.
이것이 호기심 없는 세대를
다시 한번 혼란에 빠뜨리게
할지 모르지만,
인간에게는 비굴함도 있고
절망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인간의
진정한 운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모습에 불과하다.
인간이 의지력을 행사하는 날,
그는 자유에 이르는 노정을
시작할 것이다.
정복되지 않는 영혼 에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만을
외치는 우울한 비관주의만을 우린
너무 오랫동안 들어온 것이다.
-끝-
출처: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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