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3. 11:43ㆍ카르마의 영혼
<예속에서 풀려난 만큼 자유의 책임>
하지만 나는
너희를 그대로 두면
죄로 인한 나쁜 결과를 복구할
능력이 없는 너희를
진심으로 복원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너무나 불리한
조건에 있는 너희를 위해
내 아들 ‘말씀’을 파견했다.
내가 그에게 너희와 똑같은
본성을 준 이유는
너희가 죄를 범한 그 본성으로
고통을 겪고, 수치스런 십자가
죽음까지 당하는 그 고통을 통해
내 분노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내 정의와 신적 자비들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나의 자비는
너희가 죄를 속량하고
너희가 창조한 목적대로 선을 얻어
누릴 수 있길 원하는 바람이었다.
인성이 신성과 합일할 때
온 인류의 죄가 풀려 자유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외아들이
이 두 가지 본성을 하나로
합성한 가운데
자신의 피를 그의 신성으로 적셔
하나의 빵으로 반죽된 그 피로
바친 희생 제사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놔둔 것은 다름 아닌
나에 대한 그의 뜨거운
신적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인간 본성이
자신의 죄를 속량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신적 본성 덕분이다.
이렇게 해서
아담의 죄의 고름은 빠져나가고
남은 것은 죄에 끌리는 성향과
온갖 종류의 육체적 약점들이
흉터처럼 남아 있는 것과 같다.
아담의 죄는 죽음과 같은 맹독성
고름을 줄줄 흘리고 있었지만
너희는 너무나 나약하여
혼자서 그것을 짜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의사(나의 외아들)가
와서 그 상처를 간호하고,
너희가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쓰고 쓴 약을 몸소 들이켰다.
그는 아기가 쓴맛을 참고 견디기에
너무도 연약한 데 반해
자신은 크고 강하기에
아기가 마셔야 할 약을 대신 먹는
유모와 같았다.
내 아들은 너희의 유모다.
그래서 크고 강한 자신의 신성을
너희 본성과 결합시킨 다음,
죄로 인해 아기처럼 연약해진
너희를 치유하고 생명을 주기 위해
고통스런 십자가 죽음이라는
쓰고 쓴 약을 들이킨 것이다.
너희가 부모를 통해 배태되면서
그들로부터 전염되는 이 원죄는
오로지 흉터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 흉터마저도 성세를 통해
영혼에서 제거된다.
비록 완벽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왜냐하면 세례는 영광스럽고
고귀한 피로 인한 은총의 생명
전달의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세례를 받으면 그 순간
원죄는 그에게서 제거되고
은총이 쏟아져 들어온다.
원죄의 흔적인 죄에 기우는
성향은 내가 이미 말한 대로
하나의 약점이 되지만,
영혼이 하나님의 위대함과 고귀함을
알려는 앎과 의지만 있다면
이를 제어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리하여 영혼은 기쁘고 반갑게
은총을 받아들여 그 은총이
자기 내부에서 성장토록 만드는
그릇과 같아지는데,
이때 성장의 정도는
그의 애정과 염원의 토대인
나를 사랑하는 섬김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려는 자기 선택과
맞아떨어진다.
또는 그 영혼은 성세를 통해
은총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악에 어울리도록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그가 전자와 후자를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 되어
있을 때는 자기 좋을 대로
선 또는 악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그만큼 너희 인간의 자유는
대단한 것이며,
너희가 영광스러운 피로
더없이 강해진 까닭에
악마든 다른 어떤 피조물이든
너희가 원하지 않는 한
털끝만 한 죄도 강제로
범하게 하지 못한다.
너희는 지배나 지휘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만큼,
너희 힘을 충분히 통제하여
창조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준 은총을 무시하고
짐승처럼 진흙탕에서 뒹굴기로
작정한다면,
너희는 더없이
비참하게 될 것이다.
그토록 어리석기 짝이 없는 불쌍한
피조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얻어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출처: ‘시에나의 가타리나’
- 대 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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