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8. 05:26ㆍ카르마의 영혼
<진리가 없어진 사람 껍데기들>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어제 항구에서 말씀하던
갈릴래아 분이십니까?”
“그렇소, 나요.”
“그럼, 여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빨리 오겠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와
급히 뛰어간다.
그동안 다른 제자들도
마태오와 요한만 빼고 다 돌아왔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묻는다.
“로마 여잔가 봐.” 하고
시몬과 다른 사도들이 대답한다.
“그래 뭘 청한 거야?”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
알게 되겠지.”
그동안 사람들이 가까이 와서
호기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잠시 후 여인이 다른
로마인들과 같이 돌아온다.
“선생님이 바로 그 선생님이십니까?”
하고 부잣집 하인 같은
사람이 묻는다.
그렇다는
말을 듣고 청한다.
“글라우디아의 친구인 어린 딸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이 선생님께
폐가 되겠습니까?
어린아이가 숨이 막히기 때문에
죽어가는데 아이가 무슨 병으로
죽어가는지 의사도 모릅니다.
어제저녁에는 건강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갑시다.”
그들이 어제 있던 곳으로
가던 길을 몇 걸음 가니
로마인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활짝 열린 대문의 집에 이른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하고 말하고
그 남자가 빨리 들어갔다가
곧 다시 와서 말한다.
“들어 오십시오.”
그러나 예수께서 들어가시기도 전에
젊은 여자 한 사람이 집에서
뛰어나온다.
여자는 품위가 있으나
분명히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여자는 몇 달밖에 안 된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데,
아이는 물에 빠져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축 늘어졌다.
치명적인 디프테리아에 걸려
다 죽어가게 된 것 같다.
여인은 파선을 당한 사람이
암초를 피해 가듯 예수의
가슴을 피해 들어온다.
그 여자가 얼마나 우는지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예수께서 어린 여자아이를 받으신다.
아이는 손톱이 벌써 자줏빛이 된
고사리 같은 손이
작은 경련을 일으킨다.
예수께서 아이를 들어 올리시니,
아이의 작은 머리가 힘없이
뒤로 축 늘어진다.
아이의 엄마는 히브리인 앞에서
로마인의 자존심도 보이지 않고,
예수의 발 앞
먼지 속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들고, 머리카락은 반쯤
헝클어진 채 팔을 내밀어 예수의
겉옷을 붙잡고 매달려 흐느껴 운다.
예수께서는 오른손 검지에
침을 묻혀 할딱이는 작은 입
속으로 집어넣고 깊숙이 들이마신다.
여자아이는 몸부림을 치면서
얼굴이 한층 더 꺼멓게 된다.
아이 엄마는 “안 돼요! 안 돼요!”
하고 부르짖는다.
그리고 칼이 몸을 꿰뚫는
것처럼 몸을 뒤튼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다.
잠시 후 예수의 손가락에 화농의
점막 한 뭉치를 가지고 나온다.
여자아이는 이제 몸부림을
치지 않고 눈물 몇 방울 흘린 다음
진정되어 순진한 미소를 짓고,
귀여운 손을 흔들고,
먹이를 기다리며 날 개 짓하고,
짹짹거리는 새처럼 입술을 움직인다.
“자 받으시오. 젖을 주시오.
이제 다 나았소.”
아이 엄마는 너무도 어리둥절해서
어린아이를 받아서 먼지 속에
주저앉은 채 그대로 아이에게
입맞춤하며 쓰다듬고
젖을 주고 하며, 몹시 흥분하여
어린아이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한 로마인이
예수께 묻는다.
“아니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가 있었습니까?
나는 총독의 주치의이고
학자입니다.
그런데 그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해보았지만, 깊숙이,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
“선생은 학자이시지만
참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때문으로
찬미받으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곳을 떠나려고 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인
세 명의 바리사이파 떼가 개입한다.
“선생은 어떻게 감히 외국
사람에게 접근하셨습니까?
저들은 타락하고 부정해서
저들을 가까이하는 사람도
저들과 같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엄하게 똑바로
바라보시고 나서 말씀하신다.
“당신은 인간 생활과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악제가 아니시오?
오래된 상점들 근처에 사는 장사꾼과
거래를 맺어보려고 지난 티 쉬리 달에
여기 왔던 아조에서 온 사람 아니오?
또 당신은 로마인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려고 여기 온 라마의
요셉이 아니오?
여기 왜 왔는지 나나 당신이나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러면? 그런 당신들은
부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의사는 결코 외국인이 아닙니다.
의사는 육체를 치료하는데,
육체는 모든 사람이 같습니다.”
“그럼 영혼도 그렇지요.
육체보다도 더 그렇지요.
조금 전 내가 무엇을 치료했소?
어린 여자아이의 죄 없는
육체를 고쳐 주었소.
그리고 나는 이와 마찬가지로
무죄하지 않은 외국인들의
영혼도 고쳐지기를 바라오.
의사로서 또 메시아로서.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접근할 수 있소.”
“아닙니다. 못하십니다.”
“못한다고요, 악제?
그러면 당신은 왜 로마의 상인과
거래를 하고 있소?”
“그 사람들은 내게는 상품과
돈으로만 이웃일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의 살은
만지지 않고, 그 사람의 손이
만진 것만 만지기 때문에
당신은 부정을 타지
않는다는 말이로군요.
오! 눈멀고 잔인한 사람들!
다들 들으시오!
바로 이 사람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예언자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는 사제들에게
물어보아라.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싼 옷자락에
빵이나 익힌 음식이나 포도주나
올리브기름이나
그밖에 어떤 음식이 닿았다고 하여,
그 옷자락이 제물처럼 거룩해지느냐?
사제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악제가 또
‘몸이 시체에 닿아 부정 탄 사람이
어떤 음식을 만졌으면,
그 음식도 부정을 타느냐? 하고
물으니 사제들은
‘부정을 탄다.’ 고
대답하였다.’
당신들은 이와 같이 교활하며
거짓이고 통일성 없는 행동 방식으로
선을 배제하고 단죄하고 당신들
이익에 유리한 것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경멸도 혐오도 없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개인적인 손해를
피하기 위해 어떤 물건이 부정하고
어떤 물건이 부정하게 만드는지,
또 어떤 물건이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면 거짓말하는 입을 가진
당신들은, 거룩한 물건에
닿아서 거룩하게 된 것이
거룩하지 못하다고
증언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부정한 물건에 닿았던 것은
부정하다고 공언할 수 있습니까?
진리의 법의 사제로서
거짓말을 하는 당신들,
진리의 법을 새끼 꼬듯 배배 꼬아,
오직 당신들 이익에 도움이 될
어떤 것만을 거기서 끌어내려는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당신들,
종교적 구실로
당신들의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원한을 토로하는 위선자고,
하느님의 것을 모독하는 인간이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욕하고
원수 취급하는 바리사이파 당신들이
스스로 모순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정말 잘 들어두시오.
당신들 행위 하나하나,
당신들 결론 하나하나,
당신의 행동 방식 하나하나가
일련의 교묘한 기계장치처럼
움직이는데,
당신들의 이기주의, 격정, 비 성실,
증오, 지배욕, 질투 따위가
그 기계장치의 바퀴와 용수철과
중량과 졸라매는 끈 노릇을 합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탐욕스럽고, 공포에 떨고,
증오심에 불타면서,
당신들은 당신네 특권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면서 당신들보다
우월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한 공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공포와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사람 같은 취급을
당해도 되는 당연한 사람들입니다!
하깨가 말하는 것과 같이
곡식 스무 말을 가지고
열 말로 만들고,
포도주 쉰 통을 가지고
스무 통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가로채는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은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모범으로도 그렇고,
하느님께 드려야 할
사랑으로도 그렇고,
곡식 섬 무더기와 포도주 통
무더기서 도적질로 빼낼 게 아니라
오히려 배가 고픈 사람들을 위해
당신들 재산으로 거기에 보태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당신들은 뜨거운 바람과
곰팡이병과 우박으로
당신들 손으로 이룩한 모든 것이
불모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을 당해도 마땅합니다.
당신들 중에서 내게 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당신들이 보기에는 지저분한 사람들,
쓰레기 같은 사람들,
참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것 같은 저 사람들,
또 저 사람들입니다.
그 하느님께서 말과 일로
당신을 나타내시는
그 사람들이 내게 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들은!
당신들은 벽감(壁龕)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우상들과 같이 비정하고,
냉담하게 향과 예배만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자신 스스로를
신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참 하느님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처럼 여기는 것은
당신들에게는 무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감행하지
못하는 것을 당신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위험한 것으로 봅니다.
정말이지 당신들은 우상들이고
또한 큰 우상의 종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감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행하는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께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카르마의 영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이 하느님입니까 (0) | 2022.12.15 |
---|---|
무익한 기적 (1) | 2022.12.12 |
이렇게 해서 뭘 하나 (0) | 2022.12.05 |
미혹함도 교만이다 (0) | 2022.12.01 |
사람의 생명과 죽음 (0) | 2022.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