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3. 06:57ㆍ카르마의 영혼
<윤회(전생)는 없다 [1]>
”선생님 저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밤에 떠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선생님께서 어디 계시냐고
묻는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두에게
‘선생님은 떠나셨소’
하고만 말했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자기 배를
선생님께 드렸다고 말한
어부에게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바보 같은 내 처남 녀석!”하고
베드로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말하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도 일렀는데 말이야!
또 우리가 베싸이다로
간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말을 하면 수염을
뽑아놓겠다고 했는데 말이야!
이 녀석을, 뽑아 놓고 말고.
그 녀석 때문에 이젠!
평화고, 조용함이고, 휴식이고,
안녕! 이란 말이야!”
“시몬아, 침착해라!
우리는 벌써 여러 날 동안
조용히 있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추구하던 목적을
부분적으로는 달성했다.
그것은 너희들을 가르치고 위로하고,
또 너희들을 진정시켜
너희와 가파르나움의
바리사이파 사람들 사이에
모욕과 충돌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제는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자.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상을 주기 위해.
그리고 이 사랑 역시
우리에게 위안이 되지 않느냐?
우리는 미움에서
오는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랑이 있다.
그러니 기쁨이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갑자기
잔잔해지는 바람 같이 진정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확연히
나타나는 소원의 얼굴을 가지고
당신을 기다리는 병자들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 가셔서
병든 어린 자식을 당신께 내미는
율법 학자에게까지도
친절하시고 인내하시며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고쳐 주신다.
자식을 치료받은 그 율법 학자가
예수께 말한다.
"보십시오. 선생님께서는
도망하시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미움과 사랑은 선생님을
찾아내는 재간이 있습니다.
여기선 ‘아가서’에서의 말처럼
사랑이 선생님을 찾아냈습니다.
이제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선생님께서 아가의 신랑과 같으셔서,
마치 아미나 답의 순찰대와
사두이륜전차(四頭二輪戰車)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남편을 찾아가는
술라미 여인과 같이
선생님께 옵니다!”
“당신은 왜
그런 말을 하시오? 왜?”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선생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오는 것은 위험합니다.
로마가 선생님을 감시하고
성전이 선생님을 미워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보시오, 왜 나를 시험하시오?
당신 말은,
내 답변을 가지고 로마와
성전에 보고하기 위한
함정이 아니오?
나는 당신 아들 고쳐 주며
당신에게 함정을 파지는 않았는데…”
부드러운 나무람을 듣고
율법 학자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고백한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사람들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성인이시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사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넣어 준 효모(酵母)가
제 안에서 발효되고 있는
중에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효모 발효에 적당한
온도를 당신에게서도 얻은 것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효모 없이,
아니 그것보다 더 새로운
효모를 가지고 돌아갑니다.”
“나도 압니다.
그리고 나는 원한을 품지 않소.
자기 자신 의지로
죄 중에 있는 사람도 많고,
남의 의지로
죄 중에 있는 사람도 많소.
정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실 때 쓰실
척도가 다를 것입니다.
율법 학자인 당신은
의로운 사람이 되시오.
그리고 이후로는
사람들이 당신을 타락시킨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타락시키지 마시오.
세상이 당신에게 압력을 가할 때는
죽음에서 구해진 당신 아들의
살아 있는 은총을 자세히 느끼고,
거기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시오.”
“선생님께 감사하겠습니다.”
“하느님께 드리시오.
어떤 영광과 어떤 찬미도
하느님께 드려야 합니다.
나는 그분의 메시아니
내가 제일 먼저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나는 제일 먼저
하느님께 순종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공경하고
섬길 때는 품격이
떨어지지 않지만,
죄를 섬길 때는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기 마련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말씀을 잘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항상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모든 사람에게입니다.
내가 안나나, 가말리엘에게 말하거나
시골길에서 문둥병자 거지에게
말하거나 똑같은 말이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이오.”
“그러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들은 모두가 선생님의
말씀 하나 아니면,
선생님의 은총 하나를
애원하기 위해 여기 왔으니까요.”
“그들의 신념을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에 대해
내가 선입관을 가졌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말해주겠소.”
“제가 가지고 있던
선입관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선생님께 반대하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성실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솔직하오. 그 때문에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이해할 자격이 있소.
그러나 당신의 신념은
아직 죽지 않았소.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하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불태우는 잡초와 같소.
표면상으로는 그것이
사라진 것 같고,
또 실제에 있어서
극심한 기습을 받아
낡아지고 헐어지기는 했소.
그러나 그 뿌리는 아직 살아있고,
땅은 뿌리에 영양을 주고,
이슬이 뿌리에 줄기를 내리게 하고,
줄기들은 새잎을 돋아나게
힘을 줍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 깊게 살피고 감시해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잡초 속에
침범당하게 되오.
이스라엘 잡초의 목숨은 끈질겨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죽어야 합니까?
이스라엘이 잡초입니까?”
“이스라엘은 다시
살아나가기 위해 죽어야 하오.”
“영혼의 전생(轉生)을 말씀하십니까?”
“영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요.
전생이란 어떤 종류의 것도 없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소.”
“그리스 문화가 이 믿음을
우리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이 믿음을 즐기고,
매우 고상한 양식처럼
이것들을 영광으로 여깁니다.”
“613개의 부차적 계율 중에
하나를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저주를 외치는 사람들로서는
터무니없는 모순이오.”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적입니다.
사람들은 미워하는 것을
본받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나를
미워하니 나를 본받으시오.
그것이 당신들에게
더 나을 거요.”
율법 학자는 예수의 이 엉뚱한
말을 듣고 억지로 미소를 짓는 체
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듣고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두 사람 말을 되풀이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끼리 이야기입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영혼의 전생(轉生)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오류요. 내가 이미 말했소.”
“존재하고 있는 것은 파괴될 수
없기에,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은 자에게서 오고,
죽은 자는 산 자들에게서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실로 영원한 것은 파괴되지 않소.
그러나 당신 생각에,
조물주 께서의 한계에 대해
당신 생각을 말해 보시오.”
“아닙니다, 선생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조물주를
작게 여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 말했소.
그렇다면 영이 일정한 수효밖에
없기 때문에,
조물주께서 영의 전생을
허락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겠소?”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영혼의
불멸에 대한 중요한 이 생각이,
비록 이교도에게 있어서
불멸이 생겨난 방식에
정확하지 못한 평가적인 오류가
합쳐졌다 하더라도,
여기 이스라엘에선 완전해야 할 거요.
그런데 오히려 반대로,
이교도 개념 주장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가서는
그것이 축소되고 가치가 떨어져
사악한 생각이 되었소.
그것은 혼자서
영원한 진리의 냄새만
맡아본 것으로,
우러러볼 만한 것으로
나타날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혼잡스러운 특성을
증명하는 한 가지 생각으로는
영광이 되지는 못하오.
이교도의 경우엔
사람들을 영혼이라고 부르며,
우리를 동물과 구별 짓는
불멸의 생명에 대한 직관력 때문에
영광이 되지만 말이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의 지혜와
참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처럼 철저하게 영적인 것까지도,
물질주의적이 되는 것은
생각의 타락이오.
영의 실제 움직임은
조물주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조물주에게 가는 것밖에 없소.
사람이 죽은 다음에
삶이나 죽음의 심판을 받기 위해
조물주께 가는 거요. 이것이 진리요.
그리고 그 사람을 보내는 곳에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오.”
“선생님께서는 연옥을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왜요? 인정하오. 왜 그것을 묻소?”
“선생님께서는
‘사람은 보내진 곳에 남아 있다’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연옥은
일시적인 것인데요.”
“나는 그 연옥도 영원한 생명과
동일시(同一視) 하기 때문이오.
연옥은 벌써 영의 ‘삶’이오.
축소되고 구속되긴 했지만
역시 영의 생명이오.
연옥에 일시적 체류가 끝나면
영혼은 완전한 생명을 얻고
더 이상 한계도, 속박도 없는
생명을 누리게 되오.
남아 있는 것은 둘 뿐일 거요,
하늘과 심연 혹은 천당과 지옥,
지극히 복된 사람과
영벌을 받는 사람.
두 가지 부류의
사람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존하는
이, 세 가지 나라에선 어떤 영혼도
다시 돌아와서 육체를
절대 차지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최후의 부활이 있을 때까지,
이렇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때는, 영이 육체 안에
들어가 사는 것과,
불멸의 것이,
죽을 것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이
영원히 끝날 것입니다.”
....
“그렇소. 어떤 사람이
살기 위해 창조되는 순간부터
영과 은총과 그의 의지로
영원한 생명에는 이를 수 있소.
그러나 영원에 이르지는 못하오.
일생은 시작을 전제하오.
하느님께서는 시작이
없으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목숨’이란 말은 없소.”
“그럼 선생님은요?”
"나도 육체를 가졌고,
사람의 육체 안에
그리스도의 영혼을
하느님의 영에 결합시켰기
때문에 나도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살아 계신 분’이라 말하는데요.”
“참으로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모르시오.
하느님은 생명 자체이시니까요.
한없는 생명.
하느님의 목숨이 아니라
바로 생명 이시오.
이것뿐이오. 율법 학자 양반,
이것은 느낌(뉘앙스)이요.
또한 이 지혜와 진리는
뉘앙스로 겉모양이 포장되었오.”
“이방인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이방인들에게는 이렇게 말하지 않소.
그들은 알아듣지를 못해요.
그래서 그들에게는 태양을 보여주오.
마치 그때까지 눈이 먼 바보였다가
기적으로 눈을 뜨고 총명해진
어린이에게 보여주듯 보여주오.
따라서 하나의 천체로 보여주며,
그 구성을 설명하기는
마땅치 않소.
그러나 당신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경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오.
무척 오래전부터 하느님의 손가락이
당신들의 눈을 뜨게 하셨고,
당신들의 정신을
비추어 주셨소….”
“맞습니다, 선생님.
그런데도 우리는 소경이며
바보들입니다.”
“당신들 스스로가 그렇게 된 거요.
그러면서 당신들을,
당신들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적을 원치 않소.”
“선생님 …”
“율법 학자 양반, 이것은 사실이오.”
율법 학자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문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를 떠나 멀리 가신다.
출처: 마리아 발또르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https://cafe.daum.net/xp8046/YVLT/44
'카르마의 영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굴에 나타나는 영혼의 변화 (0) | 2023.01.26 |
---|---|
윤회(전생)는 없다 [2] (1) | 2023.01.23 |
사람이며 하느님이신 (1) | 2023.01.19 |
기적의 상속 (1) | 2023.01.19 |
상속인 (0) | 2023.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