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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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별세
옥상 높이의 당신 혼자 계시는 작은 방에 성모님은 온통 흰 아마포 옷을 입으셨다. 몸 전체를 감싼 옷도, 목 아래쪽에서 채워져 어깨 뒤로 흘러내린 겉옷도, 머리에서 늘어진 아주 고운 베일도 모두 희다. 성모님은 당신 옷들과 늘 보존해 오는 예수의 옷들을 정리하시는 중이다. 제일 좋은 것을 고르시는데, 별로 없다. 당신 옷 가운데서는 갈바리아 산에서 입으셨던 옷과 겉옷을 꺼내시고, 아드님의 옷 가운데에선 여름에 늘 입으시던 아마포 옷과 겟세마니 동산에서 찾아낸 겉옷을 꺼내시는데, 겉옷에는 그 무서운 시간에 흘렸던 피와 땀의 얼룩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옷들을 정성스럽게 개키고, 당신 예수의 피로 얼룩진 겉옷에 입맞춤하신 다음 궤 있는 쪽으로 가신다. 그 궤 속에는 이젠 여러 해가 지났지만, 최후의 만찬과 ..
2023.04.03 -
베드로의 최초 의식
방안에는 남녀 모두가 있다. 식탁 근처 기는 하지만 한 구원 속의 여자무리들 속에 성모 마리아가 라자로의 마르타와 마리아, 니까, 엘리사, 알패오의 마리아, 살로메, 쿠자의 요안나 등, 말하자면 히브리인이거나 히브리인이 아닌 많은 여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계신다. 이들은 예수께서 병을 고쳐 주시고 위로하시고 전도하시어 그분의 양 떼들 중 양이된 사람들이다. 남자 중에는 니고데모, 라자로,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대단히 많은 제자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스테파노, 헤르마, 목자들과 엔갓디의 회당장 아들 엘리세오와 그밖에 대단히 많은 사람이 있다. 론지노도 있는데, 그는 군복을 입지 않고, 보통 사람과 같이 길고 수수한 갈색 옷을 입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성령강림과 열두 사도의 ..
2023.03.30 -
승천
식탁 위에는 구운 고기와 작은 치즈들, 검은 작은 올리브들, 그리고 작은 포도주 항아리와 그보다 더 큰 항아리와 큰 빵들도 있다. 호화로운 의식을 위한 장식은 없고, 다만 먹기 위해 차려 놓은 소박한 식탁이다. 예수께서 음식을 바치시고, 각자 몫을 나누신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알패오의 야보고 가운데 계신다. 예수께서 그들을 그 자리로 부르신 것이다. 요한과 알패오의 유다와 야보고는 예수의 맞은편에 있고, 토마와 필립보와 마태오는 한쪽 옆구리에, 안드레아와 바르톨로메오와 열성당원은 다른 쪽 옆구리에 있다 따라서 모두가 그들의 예수를 볼 수 있다. … 식사는 조용히 진행된다. 예수를 가까이서 모실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다가온 사도들은 예수께서 부활서부터 계속해서 사랑을 가득 가지시고 집단에게나 개인에게 나..
2023.03.27 -
부활 [1]
경비병들은 지루함과 추위로 몸은 떨리고 졸음도 오고 해서 여러 가지 자세로 무덤을 지키고 있다. 무덤 돌문 둘레는 석회를 두껍게 발라 마치 벽처럼 보강했고, 그 불투명한 흰색의 석회 위에는 다른 도장들과 함께 직접 성전 관인(官印)이 찍힌 넓은 장미꽃 장식 모양의 붉은 초가 눈에 보인다. 땅바닥에는 재와 아직 꺼지지 않은 깜부기불이 있는 걸 보니 경비병들이 불을 피웠던 모양이고, 또 음식 찌꺼기와 양의 잔뼈들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놀음도 하고 음식도 먹은 모양이다. 양의 잔뼈는 우리네 도미노 놀이나 우리네 어린이들 구슬 놀이처럼 길바닥에 원시적 말판을 그려놓고 하는 어떤 놀이에 쓰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지쳐서 모든 것을 버려둔 채로 자거나, 지키는 것에서 최대한의 편한..
2023.03.23 -
부활 [2]
… 한편, 막달라 마리아는 정확하게 아리마태의 요셉 동산에 들어가는 골목길 어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의 징조인, 힘차면서 듣기 좋은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서쪽에 끈질기게 버티고 있던 별 하나가 있는 곳 하늘이 밝아지며, 그때까진 엷은 초록색이던 공기가 커다란 금빛 도는 빛으로 밝게 변하며, 마치 불타는 듯 찬란한 흰빛의 둥근 덩어리 같은 것이 내려오면서 불그레한 새벽빛 고요함의 공기를 번갯불처럼 갈라놓는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빛이 자신을 거의 스쳐 지나가듯 하기에 땅에 쓰러졌다. 마리아는 잠시 몸이 기울어지면서 ‘주님!’하고 중얼거린다. 바람이 지나간 후의 나무줄기처럼 다시 일어나 한층 더 빨리 동산으로 뛰어간다. 마리아는 마치 쫓겨서 둥지로 돌아가는 새 모양으로 바위를 깎아..
2023.03.23 -
부활 [3]
(4월 사과꽃 개화 시기 일요일 05시경)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마리아의 열렬한 기도가 내 부활을 얼마 동안 앞당겼다. 나는 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부활할 것이다.’ 나는 금요일 오후 세 시에 죽었다. 너희가 날짜로 계산하든, 시간으로 계산하든, 주일 새벽에 내가 부활하도록 되어 있지 않았다. 내 육체에 생명이 없었던 것은 72시간이 아니라 38시간이었다. 날로 치더라도, 내가 사흘 동안 무덤에 있었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셋째 날 저녁까지는 가야 했었다. 그러나 마리아가 기적을 앞당겼다. 마치 마리아가 그의 기도로서 세상에 구원을 위해 정해진 시기를 몇 해 앞서 하늘 문을 열었던 것처럼, 죽어가는 그의 마음에 격려를 위해 몇 시간 ..
2023.03.23 -
부활 [4]
“시몬,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가 선생님을 사랑하고 용서를 빌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아시게 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말이야. 그리고 요한 자네는? 자네는 어머님과 말을 많이 했으니, 날 좀 도와주게. 이 불쌍한 베드로 혼자 내 버려 두는 것은 동정이 아니네!” 요한은 창피해하는 동료들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마음이 움직여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나는 말이야. 나는 그저 선생님께 ‘사랑합니다’ 하고만 말씀드리겠어. 사랑에는 용서받으려는 욕망과 뉘우침도 들어 있어. 그렇지만… 난 모르겠어. 시몬, 자네 생각은 어때?” 그러자 열성 당원은 말한다. “나는 기적을 받은 우리가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는 말을 외치겠어. 나는 ‘예수님’하고 말할 거야 그뿐이야.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보다..
2023.03.23 -
부활 [5]
요한이 제일 먼저 일어나서 다정스러우면서도 무자비하게 모든 사건의 줄거리를 환기시킨다. 그는 예수께서 몰약(沒藥)을 탄 포도주를 물리친 순간을 말하고, 옷을 벗고 어머니의 베일을 두르신 순간과, 심하게 채찍을 맞아 상처 난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 순간과, 십자가 위에 누우시고, 첫 번째 못을 박을 때 비명을 지르시다가, 어머니께서 너무 괴로워하지 않도록 비명 지르는 것을 멈추던 순간과, 사형 집행인들이 예수님의 손목을 찢고, 미리 만들어 놓은 구멍에까지 팔을 끌어당기느라고 팔을 탈구(脫臼)시킨 순간과, 예수님을 완전히 못 박으신 다음, 못을 꼬부리기 위해 십자가를 뒤집어 놓으니, 그 무게가 예수님 몸을 찍어 누르는 바람에 예수님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던 순간과, 십자가를 다시 돌려세워 끌고 가서 구멍 ..
2023.03.23 -
부활 [6]
그 경건한 여자들은, 집까지 사도들과 동행해서, 빗장 지른 대문도 직접 그들이 두드린다. 그때 예수께서 대문을 열려고 나오셔서 어두운 입구를, 영광스럽게 되신 당신 모습으로 가득히 채우신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당신들 동정으로 인해 당신들에게 평화가 있길 바랍니다.” 여인들이 깜짝 놀라서 화석같이 되었다. 여자들은 대문이 다시 닫히고 예수와 사도들이 사라질 때까지 정신이 나간 듯 그대로 서 있다. 그러다가 정신이 돌아온다. “선생님 보았어? 선생님이었어. 아름다우셨어! 전보다도 더 아름다우셨어. 그리고 살아계셨어! 유령이 아니었어! 진짜 사람이야! 그분 목소리! 그분 미소! 손을 움직이고 계셨어. 그 상처가 얼마나 빨간지 봤어? 아니야. 난 그분 가슴이 산 사람처럼 정말 숨을 쉬고 있는 걸 ..
2023.03.23